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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인사이트/한화 스포츠

국내 최초 메이저리거, '박찬호'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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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라는 야구선수를 알게 된 것은 1997년 어느 날 이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시 중학교에 갓 입학한 칸지는 아버지 손에 이끌려 새벽낚시에 끌려가게 되었고, 좋지 않은 기상 상태로 인해 어느 허름한 시골 민박집에 작은 TV 앞에서 그를 처음 만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야구에 대해 많이 아는 것도 없었고, 룰도 전혀 모르는 상태였습니다만 거인같은 메이저리그 타자들을 잘 보이지도 않는 빠른 볼로 연속 삼진을 잡아내던 박찬호의 모습은 옆에서 우렁찬 목소리로 고함을 지르시던 아버지의 모습과 함께 어린 나이에 크게 각인되었는데요, 사실 상 이를 통해 야구라는 스포츠에 눈을 뜨게 된 계기가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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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보시고 있는 분들의 연령별 등에 따라 박찬호라는 이름이 가지고 오는 의미는 조금씩 다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실 야구에 대해 관심을 가진지 얼마 되지 않고, 박찬호 선수의 전성기 때 모습을 확인하지 못한 젊은 세대들에게 그의 대단함을 말로 설명하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IMF 등으로 당시 상당히 힘들었던 국내 상황에서 박세리와 더불어 국민들에게 큰 힘을 주었던 박찬호 선수의 모습은 단지 실력 뿐만이 아닌 상징적인 존재였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힘들 것 입니다. 그러한 박찬호 선수가 지난 30, 길고 긴 선수 생활을 마치고 한화이글스를 마지막으로 선수 은퇴를 선언했을 때 한화이글스 팬으로, 또한 박찬호 선수의 팬으로서 큰 아쉬움이 남기도 했었는데요, 그렇다면 지금부터 박찬호 선수의 선수 시절 활약상과 그가 우리에게 주고 간 선물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국 최초 메이저리거 박찬호


박찬호, 그의 존재는 같은 메이저리그 팀 임에도 불구하고 친정이나 다름 없었던 LA 다져스에는 굴러온 복덩이나 마찬가지였던 반면, 두번째 팀이였던 텍사스 레인저스에게는 잊고 싶은 과거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극과 극의 존재였다고 할 수 있었고, 실제 메이저리그에서의 그를 향한 평가 역시 지속적으로 논란을 불러 일으키는 이슈 메이커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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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그가 전성기를 구가했던 LA 다저스 시절 (1997~2001) 그의 성적은 당시 아시아 인으로서는 보기 힘든 파워피쳐 형식의 승리를 따내는 야생마 같은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전성기 시절 160Km 에 육박하는 패스트볼로 타자들이 알고도 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올해 베테랑으로 보여주었던 높은 제구력과 다양한 변화구, 그리고 완급조절 등은 오히려 전성기때 가지지 못했던 무기들 입니다만, 반대로 말해 이런 중요한 것들을 가지고 있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완력으로 타자들과 승부해 이겨 나갔다는 것은 그의 야구선수로서의 엄청난 능력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죠.


특히 박찬호 선수가 전성기를 달리던 LA 다저스 시절의 메이저리그는 전형적인 타고투저의 시대로, 세미소사, 제리 맥과이어 등의 역대급 타자들이 즐비하였고, 또한 약물의 시대라고 할 만큼 선수들의 약물 복용이 엄청나게 이루어지던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투수들에게는 악몽과도 같았던 이 시대에서 전성기를 구가한 몇 안되는 투수이기도 하다는 점은, 박찬호 선수의 능력을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아래 영상은 최다승인 18승을 거두었던 2000, 박찬호 선수의 메이저리그 한경기 최다 탈삼진인 14K 영상입니다. 해당 영상을 보시면 박찬호 선수의 볼이 얼마나 무시무시 했는지 단편적으로나마 확인해 보실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하지만 이러한 박찬호 선수에게도 흑역사가 찾아오니 바로 얼마 전 다르빗슈 유가 들어간 텍사스 레인저스로의 이적이 바로 그것 입니다. LA 다저스의 좋은 성적으로 인해 초대박 FA (5 6500만 달러) 를 터트리고 당당하게 텍사스 레인저스에 입성한 박찬호 선수는 이적 첫해 9 8패라는 에이스로서는 초라한 성적과 함께 고질적인 부상의 시작으로 이 후 3년간 단 50경기 정도만을 뛰고 센디에이고로 트레이드 되고야 맙니다. 워낙 좋은 모습과 기대를 많이 받았던 선수이고, 실제 FA 를 통해 엄청난 연봉을 받는 선수가 되었기 때문에 곧바로 이어진 그의 부진은 팬들에게 많은 질타를 받게 되었고, 이는 메이저리그에서 박찬호 선수가 두 번째 전성기를 가져오지 못하게 하는 밑거름이 되어버리지 않았나 싶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한화이글스 선수로의 박찬호는?


2011년 짧은 일본 선수 생활을 마치고 2012년 드디어 박찬호 선수의 한화이글스 행이 결정되었을 때, 국내 야구팬의 한 사람으로서, 한화이글스 팬의 한 사람으로서의 기쁨은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였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사실상 박찬호 선수의 한국행을 놓고 여러가지 의견이 분분했는데요, 사실 한화팬으로서 박찬호 선수의 존재는 그의 피칭을 볼 수 있던 것 만으로 행복했던 것이지, 그가 전성기 시절의 실력을 구가하여 팀에 에이스급 투수의 성적을 내주기를 바랬던 이글스 팬은 거의 없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오히려 투수로서의 박찬호 선수의 2012 시즌 피칭은 개인적으로 기대했던 것 보다 훨씬 더 대단한 것이였다고 생각될 정도였는데요, 성적만으로 놓고 본다면 5 10, 5.06 의 평범한 성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실제 그의 투구 내용을 보면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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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선발투수로 나와 대부분의 경기 5~6 70~80구까지의 성적은 상당히 좋은 편해 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올 시즌 한화이글스 최대 약점인 빈약한 타선 탓에 승리가 쉽지 않았고또한 믿을 만한 불펜투수의 부재로 인해 무리하게 이닝을 끌어가다 역전당한 경기가 대부분이였음을 놓고 봤을 때결과론 적으로 4강정도의 팀 전력을 가진 팀에서 였다면 충분히 10승을 거둘 수 있었을 정도의 피칭이 올시즌 박찬호 선수의 모습이였던 것임에는 틀림이 없었습니다때문에 현재 한화이글스의 전력과 박찬호 선수의 시즌 후 은퇴 선언은 더욱 아쉬움을 남기게 하는데요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징적인 부분이 너무나도 많은 박찬호 선수이기 때문에 마무리는 멋진 은퇴경기로 치뤄질 수 있었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니다.


박찬호, 그의 이름 석자는 동시대를 살아온 야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상당히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더불어 올 시즌, 아이러니하게도 박찬호 선수의 은퇴와 함께 한화이글스의 현재 진행형 에이스인 류현진 선수의 LA 다저스 진출이 가시화 되고 있는데요, 내년 시즌 류현진 선수의 멋진 메이저리그 데뷔와 함께 박찬호 선수의 향수를 계속해서 느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은 저 혼자만의 것은 아닐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동안 야구선수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준 박찬호 선수의 열정에 박수를 보내며 앞으로도 야구인으로서 국내 야구 발전에 많은 힘이 되기를 다시한번 바라봅니다.




* 이 컨텐츠의 모든 저작권은 한화그룹 공식 블로그 한화데이즈에 있습니다.

 

원태연(칸지)| 한화프렌즈 기자단 
한화프렌즈 기자단에서 활동중인 원태연 입니다. 싫어하는 일에 게으르고 
하고 싶은 일은 
무슨일이 있어도 하는 28살, 야구를 좋아하며 항상 소년이기를 
꿈꾸는 직장인 입니다.

[블로그] Kanji's PLAY B [트위터] @WonTaeYe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