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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라이프/여행/맛집

런던에서 한달 살기를 통해 배운 ‘느린 여행의 미학’



요샌 학생들도 많이 떠난다는 해외여행인데 저는 26살이 되던 해에 첫 해외여행을 떠났어요. 친구들과 3박 4일 일정을 함께하는 일본으로 말입니다. 일본어를 잘하는 친구가 있어서 부담 없이 여정을 함께했었죠. 바로 이때, ‘한국말이 통하지 않는 낯선 곳에서의 경험’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알아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냥 관광여행이 아닌 ‘생활’을 해보고 싶어서 바로 4개월 뒤에, 유럽으로 교환학생을 떠났죠. 최근에 ‘인생도시에서의 한달 살기’가 워낙 TV에서도, 포털 사이트에서도 이슈화되다 보니 이 때의 기억이 떠오르더라고요. 





저는 폴란드 브로츠와프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할 예정이었는데요. 조금 더 빨리 유럽생활을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조금 일찍 유럽여행을 했고 조금 더 오래 ‘생활’할 곳으로 런던을 택했어요. 어찌 보면 최근 유행하는 ‘한달 살기’를 몇 년 더 이르게 경험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죠. 








런던에서 한달 살기를 결심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어요. 내셔널갤러리, 대영박물관, 자연사박물관, 빅 벤, 타워 브릿지, 런던아이 등 볼거리가 많은 도시인데다가, 당시에 런던에서 세계인을 위한 운동축제가 열릴 예정이었기 때문에 호기심이 동했죠. 축제의 열기로 런던 곳곳의 음악은 더 크게 들렸고, 거리엔 다양한 사람들도 더 북적이어서 생동감이 넘쳤답니다.





당시에 우리나라 태권도, 축구 경기를 직접 가서 보기도 했었어요. 런던에서 약 250km 떨어진 곳에서 진행되는 경기였지만 저는 관광객이 아니라 런던에서 한달 동안 생활하는 ‘거주민’이니까 한번쯤 가볼만 하겠다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망설임 없이 경기관람을 하러 갔습니다. 






낯선 이국 땅에서 우리나라 선수의 태권도 경기를 보는 기분은 참 묘하더라고요. 맘 졸이며 경기를 바라보고 있는데, 참 신기한 광경이 벌어졌어요. 관중들이 자신들의 나라와 상관없이 선수들을 응원하는 모습이었어요. 해외에서 외국인들이 한국선수를 향해 그렇게 많은 성원을 보내주다니, 왠지 모르게 벅차고 뭉클했답니다. 





이런 신기한 경험은 축구 경기장에서도 계속되었어요. 제가 예매한 경기는 우연 중 우연으로 한국과 일본, 한일전이었는데요. 번번한 응원 도구 하나 준비하지 못했던 저에게 다른 관중들이 기꺼이 태극기를 전해주더라고요. 친구로 보이는 한 무리는 사이 좋게 한국과 일본 편을 갈라 응원전을 펼쳤고요, 지나가고 있는 저를 불러 세워 함께 사진을 찍자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을 응원하던 영국인은 더 큰 미소로 저를 반겼고, 일본을 응원하던 런더너(Londoner)도 활짝 웃어줬습니다. 


지금도 경기보다 경기 전 응원전이 더 기억에 남는 것은 이 때문인 것 같아요. 거리를 가득 메웠던 모든 이들과 친구가 된 경험 말이죠. 이때 머물렀던 숙소에서 만났던 친구는 5년이 지난 지금도 연락을 주고 받는 사이예요. 서로의 발전된 점을 배우는 멋진 관계가 됐지요. 지금도 만나면 매번 이야기합니다. '계획된 것이 아니라, 우연으로 만났지만, 그때 만난 인연이 매우 소중하구나' 하고 말이지요. 





제가 만약 런던에 잠시 체류하는 여행객이었다면 런던에서 꽤 떨어진 곳에서 스포츠 경기를 관람할 생각은 하지도 못했겠죠. 그리고 이런 색다른 경험이나, 인연을 만나지도 못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우리나라 공원과는 사뭇 다른, 하이드 파크와 같은 도심 속 공원을 거닐며 여유를 만끽하는 것도 경험하지 못했겠죠. 관광지를 빠르게 돌아다니다 보면 사진은 많이 찍을 수 있지만, 일정에 쫓기다 보니 그 순간순간을 가슴에 새기기는 쉽지 않잖아요. 한달 살기를 한 덕분에 그 곳에서 느꼈던 감정을 더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여행 방법에 정답은 없죠. 누군가는 빠르게 많은 것을 보는 게 즐겁고 좋은 반면 누군가는 오래도록 길게 여유 있게 보는 것을 선호할 수도 있죠. 두 다리를 통해 직접 걷고, 거기서 느끼는 것이 있다면 어떤 방식이든 여행이 되고, 가치 있는 경험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빠른 여행만 해 오신 분들이라면, 제가 런던에서 한 느린 여행, 즉 ‘한달 살기’처럼 천천히 걷고,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한 곳에 머무는 여행을 해보시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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