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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라이프/문화/취미

백남준 없는데, 누가 그 작품을 관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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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을 하다보면, 가끔 맥이 빠질 때가 있습니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사람의 반면에 그를 묵묵하게 도와준 많은 사람들은 어둠 속에 있는 법이니까요. “쨍~”하고 볕들 날 노래를 부르며 뒷골목을 쏘다니는 사람들은 때로 “왜 나는 열심히 하는데, 인정 받지 못할까?"  한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무대에 함께 있다는 것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좋은 작품을 함께 한 것으로도 나는 족하다고 웃는 이정성 아티스트! 그와 백남준의 인연에서 물음에 답을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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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 홍종모 

세계적인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 한국 예술의 세계화를 이야기할 때 그의 이름을 빼놓을 수 없지요. 비디오아트뿐만 아닙니다. 조각과 행위예술, 드로잉은 물론, 갖가지 기행에 장르를 넘나드는 퍼포먼스는 그를 진정한 천재 현대 예술가로 존경받게 하는 바탕이 되었습니다. 


그런 그가 2006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지난 1월 29일에는 故 백남준 6주기 추모제가 열리기도 했죠.백남준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작품은 여전히 세상에 남아 있습니다. 대륙을 넘나들며 세상 곳곳의 사람들을 만나고 교감하고 있지요. “백남준이 없는데 그의 작품은 누가 설치하고 관리하지?” 문득 궁금한 생각이 드는 분, 계시겠지요. 여기 이정성 이라는 남자가 있습니다.


백남준의 아이디어와 이정성의 정성이 빚어낸 예술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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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 홍종모 

이정성과 백남준의 인연은 1986년 서울 국제무역박람회 삼성관 전시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500대가 넘는 모니터의 벽을 만드는 작업을 이정성이 맡게 되었지요. 전파상에서 실력을 쌓은 이정성의 이름은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마침 한국에 있던 백남준이 작업을 보게 되었고 직접 그를 찾아갑니다.
 
“이정성 씨, 다음 작품 좀 제작해주시오.”

 
그 다음 작품이 바로 국립현대미술관의 <다다익선(多多益善)>입니다. 500대에서 시작된 인연이 ‘다다익선’의 1,003대의 모니터 설치로 이어지게 된 것이지요. 지금도 국립현대미술관을 찾으면 현대 미술의 정수를 대표하는 듯 당당한 자태로 화려한 색채와 빛의 향연을 자랑하는 백남준과 이정성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또 이 인연을 시작으로 백남준 작품은 거의 이정성의 손을 거쳐 세상에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가끔은 한국에 있는 제게 새벽녘 국제전화를 걸어오기도 하셨어요. ‘이봐, 정성 씨, 내가 이런 생각을 해봤는데 말야’ 하면서 전화기로 한참을 설명하시고는 ‘이런 거 좀 만들 수 있어?’ 하고 물으시는 거지요. 그럼 저는 그저 ‘예’ 하고 대답하는 겁니다. 오랜 시간 곁에서 작업을 하다 보니 척 하면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알 수 있게 된 거죠.”

작품에는 언제나 백남준의 이름만이 남았지만 이정성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한 천재 예술가의 열정을 현실화하는 데 열정과 시간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설계도를 무색하게 만든 이심전심의 교감은 1995년 작 <매가트론 매트릭스>에도 깃들어 있습니다. 파리 전시를 마친 백남준과 이정성이 시내의 화려한 네온사인을 바라보다 백남준이 번쩍 떠오른 아이디어를 냅킨에 스케치한 데서 시작된 이 작품 역시 백남준의 자유로운 상상력을 구현하고자 한 이정성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기에 세상에 선을 보일 수 있었지요.


백남준은 갔어도, 이정성의 손은 쉬지 않습니다. 

2009년 제8대 이사장, 금관문화훈장, 나지완, 나지완 2009년 연봉, 백남준 2000년, 백남준 국적, 백남준 다다익선, 백남준 업적, 백남준 작품, 백남준 지누, 백남준미술관, 백남준아트센터, 백남준에대하여, 비디오아트, 세계한상대회, 이정성, 이중섭, 이철호, 재외동포, 제2의백남준, 포항백남준
세상을 내 집인 듯 누비는 고단한 삶이었지만 진정으로 행복했다는 백남준의 손, 이정성. 이제 백남준은 곁에 없지만 이정성의 일은 아직 세상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백남준의 작품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생명력을 불어넣는 일. 묵묵히 천재 아티스트의 손으로, 이름 없는 설치 기술자로 일하는 이정성에게서‘나’를 버리고 ‘큰 일’을 선택한 그의 헌신을 새삼 배우게 됩니다.


여러분, “빛나지 않는 자리니까, 평탄하지 않은 길이니까” 하며 피하고 외면했다면 그룹 60주년의 영광과 성취를 이룰 수 없었겠지요.

때론 나보다 우리를 위해, 더 크고 소중한 가치를 위해 묵묵히 땀 흘리는 그 누군가가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헌신은 희생이 아니라 결국은 나와 우리를 키워주는 크고 튼튼한 대지가 되어줄 것입니다.



글 / 허 재 훈 / iPublics
그림 / 홍종모


*이 컨텐츠는 한화그룹 사보 한화한화인 '스토리 한화' 내용을 재구성 했습니다. 
* 이 컨텐츠의 모든 저작권은 한화그룹 공식 블로그 한화데이즈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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