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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리스트 정명화가 말하는 진심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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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낳은 세계적인’이라는 수식어의 원조이자 셋이 뭉쳤을 때 더욱 빛을 발하는 ‘정 트리오’의 맏언니, 1731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 ‘브라가’의 연인, 영혼으로 연주하는 첼리스트…. 모두 음악가 정명화 앞에 붙는 수식어입니다. 청정자연이 살아 숨 쉬는 평창에서 2년 연속 ‘대관령국제음악제’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정명화씨. 유쾌한 목소리는 아름다운 음악과 같았고 경쾌한 몸짓은 춤을 추는 듯한 ‘아름다운’ 시간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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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하고 함께 음악제를 연출하는 기분이요? 물론 굉장히 자연스러운 일이죠.”


한국을 대표하는 아니, 세계인의 첼리스트, 정명화가 대관령국제음악제 예술감독을 맡은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하긴, ‘정트리오’의 맏이인 그가 아니면 누가 수많은 예술가의 개성과 무게감을 조율하며 음악제의 하모니를 완성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수긍하려던 찰나, 그가 재빨리 덧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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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음악인들은 모두 음악 프로그램을 짜는 일에 익숙해요. 리사이틀이건 음반 녹음이건 몇 년 단위로 스케줄을 생각하니까요. 동생 경화, 명훈과는 어렸을 때부터 늘 함께 음악을 해왔고, 더구나 실내악을 좋아하기 때문에 함께 프로그램을 짜고 행사를 하는 것이 생활이 되었다고 할까요? 무엇보다 손가락 부상을 털어내고 자신의 선율을 되찾은 경화와 오랜만에 연주를 해서 참 좋네요. 경화 성격이 정확하고 직설적이라 일하기 편한 점도 있고요. 역시 가족이니까 더 자연스럽게 진행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인 동생 정경화와 함께 ‘제9회 대관령국제음악제’의 공동 감독을 맡았습니다. 8월 11일까지 강원도 평창에서 펼쳐진 대관령국제음악제의 주제는 ‘춤에서 춤으로(Dancing through the Centuries)’. 전 세계에서 모인 내로라하는 아티스트들이 춤과 리듬의 아름다운 앙상블을 재현해내고 음악 애호가들은 뜨거운 박수로 진정을 다하는 그들의 예술혼에 박수를 보냈는데요.


“사실 대다수의 콘서트 음악은 ‘춤’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어요. 그와 동시에 무수한 안무가들이 음악에 맞춰 다양한 장르의 춤을 만들어온 것이죠. 음악이 리듬 없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리듬은 움직임이고, 움직임이야말로 춤의 본질입니다. 그래서 이번 음악제의 주제를 ‘춤에서 춤으로’로 정한 거예요. 올해엔 특히 염원하던 1,300석 규모의 ‘뮤직텐트’가 완공되어 웅장한 오케스트라 공연이 가능했죠.”


어느 것 하나 지나치기 어렵지만 그가 이번 음악제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인 프로그램은 뮤직텐트의 데뷔 무대인 하이든의 오라토리오 <천지창조>와 콘서트홀 무대에서 벌어지는 ‘아메리칸 발레 씨어터(ABT)’의 두 수석 무용수 부부의 공연, 국립발레단의 김주원, 이동훈 수석이 선보인 <지젤>의 파드되(pas de deux). ‘음악은 보이지 않는 춤이요, 춤은 들리지 않는 음악이다(Music is an invisible dance, as dancing is a silent music)’라 말했던 독일의 문호 장 파울(Jean Paul)의 정의를 제대로 구현해낸 아름답고 환상적인 조화였습니다.




예외 없이 성공한 사람의 뒤에는 남모르게 뒷받침해온 훌륭한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정명화 역시 예외는 아니었는데요. 그는 종종 ‘내 음악 인생은 어머니 없이 성립하지 않는다’며 어머니의 크나큰 헌신에 존경을 표했습니다. 작년 5월, 아흔을 넘겨 타계한 이원숙 여사는 ‘정 트리오’로 불리는 정명화?정경화?정명훈 남매를 세계적인 음악가로 키워낸 한국의 전형적인 어머니이자 남매의 큰 나무였습니다. ‘정트리오’를 포함해 7남매 모두 의사, 교수, 사업가 등 자신이 속한 분야에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어 일각에서는 이원숙 여사를 ‘대한민국 조기교육의 선구자’라 칭송하기도 하죠. 그렇다면 이원숙 여사의 남다른 자녀 교육법은 무엇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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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참 대단한 분이셨어요. 7남매를 키우시면서 한 번도 우리를 비교하신 적이 없었으니까요. 자식을 키우는 분들은 잘 아실텐데, 이게 생각보다 정말 쉽지가 않거든요. 또 저희는 아주 어려서부터 음악공부를 했는데요. 한국전쟁 때 피난 가면서 피아노를 꽁꽁 싸갈 정도였으니, 그 열성이 짐작이 가실 거예요. 이런 분위기에서 남매끼리 비교하셨다면 정말 의기소침해졌을 거예요. 같은 부모 밑에서 나고 자랐지만 아이들은 모두 각자 개성이 다르잖아요. 어머니는 자녀 한 명 한 명의 특성을 누구보다 잘 파악해서 단점보다는 장점을 최대한 이끌어내셨어요. 장점에 집중해서 꾸준히 재능을 개발하다 보면, 다른 소소한 단점들은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는 식이었죠.”


인터뷰 중간 그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으며 어머니에 대한 추억을 되새기는 듯했습니다. 작년 12월, 이원숙 여사를 추모하기 위해 어머니의 모교인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콘서트를 열었는데요. 당시 ‘우리들의 어머니를 위하여’란 주제로 개최된 콘서트는 무려 7년 만에 ‘정 트리오’의 연주를 다시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도 큰 화제를 불러 모았습니다. 성악가를 꿈꾸다 후에 첼로에 푹 빠졌던 정명화와 어려서부터 바이올린과 하나였던 정경화, 그리고 화음에 매혹되어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 정명훈. 세 남매가 각기 다른 악기를 가지고 이토록 한길을 고집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어머니의 보이지 않는 배려와 관심 덕분이 아니었을까요? 아이가 무얼 하고 싶어 하는지, 무얼 가장 잘할 수 있는지 누구보다 정확하게 짚어내는 어머니가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나라는 ‘정 트리오’라는 세계적인 예술가와 영혼을 울리는 하모니를 감상할 수 있게 된 것이죠.




어떻게 보면, 첼리스트 정명화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다. 어머니 외에도 훌륭한 스승을 세 분이나 만났기 때문입니다. 1961년 뉴욕 줄리어드 음악원에 입학할 당시 너무나도 유명한 첼로 바이올린 교수가 있었으니, 바로 뉴욕 필하모니 수석 첼리스트였던 레너드 로즈(Leonard Rose)였습니다. 당대 최고 첼리스트의 연주를 직접 들을 수 있는 자체로도 충분한 수업이었죠. 줄리어드 졸업 후, 그는 또 한 명의 거장을 만나게 됩니다. 베를린필하모니관현악단의 수석 연주자인 피아티고르스키(Gregor Piatigorsky)에게 마스터클래스를 3년 동안 교육받은 것. 그는 마치 어머니처럼 정명화의 음악성을 굳게 믿고 응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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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는 두 거장에 앞서, 한국에서 처음 첼로를 손에 쥐어주신 김재영 선생을 더 깊이 추억합니다. 김재영 선생은 꼬박 6년을 함께하며 정명화 첼로의 기반을 탄탄히 다져놓았죠. 무엇보다 그가 음악을 더 사랑하게끔 인내를 가지고 함께했다는 점이 가장 감사한 점입니다.


“잘난 사람에게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못난 사람에게서도 배우는 것이 우리네 삶입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더 크게 드는 생각이에요. 처음부터 뛰어난 재주를 가진 아이는 어느 지점까지는 더 빨리 도달하지만, 천천히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며 천부적인 아이보다 더 높은 지점에 오르는 아이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꾸준히 음악에 흥미를 유지하도록 돕는 일이지요. 김재영 선생님, 레너드 로즈 선생님과 피아티고르스키 선생님의 공통점이 있다면, 마치 ‘나만 최고로 좋아하는’ 느낌을 주신다는 거였어요. 내가 가진 음악성을 확신해주시니 학생으로서 저절로 자신감이 생길 수밖에요.”


정명화씨는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에게 무엇이 부족한지 안다고 말합니다. 자꾸 단점에 집착하다 보면, 자신이 뭘 잘했었는지도 잊고 왜 이 일을 하려고 했는지조차 잊게 되는데요.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어느새 능숙하게 해내던 것조차 잃어버리게 되며, 이는 그가 가장 경계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항상 학생들에게 ‘유명해지려고 음악을 하지 말고, 음악을 깊이 있게 즐기라’고 조언하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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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대교 리브로


정명화씨는 인생에서 ‘밸런스’를 가장 중요하게 여깁니다. 음악에서 아름다운 하모니를 추구하듯, 인생도 각각의 가치가 서로 균형이 맞아야 비로소 행복하다 믿기 때문이죠. 그가 한창 첼리스트로 활약하던 당시에는 ‘커리어 우먼’이 몹시 드물었기에, 정명화는 아티스트로서, 아내로서, 그리고 엄마로서 모자람 없는 하모니를 내기 위해 끊임없이 밸런스를 생각해야 했습니다.


“제가 실내악을 좋아하는 이유는, 서로의 소리를 배려하기 때문이에요. 솔로라인으로 기량을 뽐낼 때도 있지만, 내가 상대를 받쳐주어야 할 때도 있지요. 특히 하모니를 이룰 때의 그 아름다움은 솔로의 몇 배로 강해요. 그런데 이런 호흡이 무너져 불협화음이 나기 시작하면 벌써 청중이 눈치 채버리죠. 완벽한 하모니는 무엇보다 마음에 콕 꽂히기 마련입니다. 우리 사회나 회사생활 모두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잖아요. 삶의 목표는 결국 좋은 밸런스, 좋은 하모니를 이루는 데 있는 게 아닐까요? 한화그룹 역시 60년 동안 흔들림 없이 한길을 걸어온 만큼 임직원 여러분 모두 틀림없이 멋진 하모니를 이루어왔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목소리를 닮아 마음을 차분하게 하는 첼로. 어린 날, 그 장중한 음색에 반해 50년 가까이 첼로와 사랑에 빠진 정명화와, 흔들림 없이 신용과 의리를 지켜온 한화는 분명 닮아 있습니다. 


“매번 연주를 할 때마다 100%를 발휘하기 위해 모든 힘과 정성을 다해요. 물론 잘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지만, 그렇게 노력한 연주에 사람들이 더 감동하는 것 같습니다. 흔히 말하는, ‘진심은 통한다’는 게 이런 것일까요? 피아티고르스키 선생님께서 제게 해주신 말씀이 있어요. ‘네 안에 귀한 보석이 있다면, 언젠가는 빛이 나게 되어 있으니 걱정마라.’ 수십 년이 지나도 그 말이 잊혀지지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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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화 ㅣ 첼리스트,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


1944년 서울 출생. 첼로를 만나는 순간 첫눈에 사랑에 빠져 50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하고 있다. 1960년 서울시향과 협연하며 국내 무대에 데뷔, 1961년 미국 뉴욕 줄리어드 음악원에 입학하여 레너드 로즈에게 사사하고 1965년 남부 캘리포니아대학에서 피아티고르스키에게 수학했습니다. 1978년부터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 정명훈과 함께 ‘정 트리오’ 활동을 하였으며, 데카,EMI,도이치 그라마폰 등에서 많은 앨범을 발표했습니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에서 후학을 양성 하며 한국유니세프 친선대사, 동생 정경화와 함께 대관령국제음악제 예술감독을 맡는 등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습니다

   출처 / 이천아트홀 홈페이지



*이 컨텐츠는 한화그룹 사보 한화한화인 '희망인터뷰'  내용을 재구성 했습니다.
 

*이 컨텐츠의 모든 저작권은 한화그룹 공식 블로그 한화데이즈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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