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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라이프/여행/맛집

참 특별한 산책길, 경복궁 둘레길 느리게 걷기

 

 

 

참 희한한 길입니다. 하루에도 수만 명의 발걸음이 북적거리는 경복궁이건만,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어쩜 이렇게 고요할 수가 있을까요. 세종로를 오가는 차들의 번잡함도, 쭈뼛쭈뼛 회색 빌딩도, 길 하나만 건너면 다른 세상 이야기 같은 곳. 청와대를 지척에 두고 있어 심심찮게 눈에 띄는 경찰들 때문에 짐짓 삼엄한 듯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외려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곳. 바로 경복궁 둘레길입니다. 

 

 

 

 

 

 

효자동 하면 ‘효자동 이발사’가 먼저 떠오릅니다. 세종로 1번지에 푸른 기와가 얹힌 후, 이곳은 본의 아니게 매일매일 역사가 만들어지고 있는 마을이 되었지요. 하지만 사실 오래 전부터 이곳은 기록되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해왔습니다.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4번 출구에서 출발, 오른쪽에 경복궁 담장을 벗하며 시원하게 뻗은 효자로를 걷습니다. 아기자기한 카페들이 수줍게 들어서 있는 길. 사람도, 차도 바쁠 것 하나 없는 길.

 

 

 

 

이 길의 가운데 즈음 언뜻 목욕탕처럼 보이기도 하는 건물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보안여관’. 80여 년의 세월동안 이곳을 오가는 나그네들을 맞이하다가 2004년에 문을 닫았지요. 그리고 다시 문을 연 이곳은 예술가들의 전시장으로 바뀌었습니다. 다만 지금은 리모델링을 위해 잠시 비어 있는 상태지만요.

 

 

 

여러 기록으로 보건대 이곳엔 문학과 예술의 흔적이 깊게 배어 있습니다. 시인 서정주는 1930년대에 이곳에 머물며 동인지 <시인부락>을 만들었고, 시인이자 소설가인 김동리, 화가 이중섭도 문지방이 닳도록 이곳을 드나들었다고요.

 

당시 이곳은 돈 없는 예술가들이 무작정 상경해 자리를 잡기 전 장기 투숙하던 공간이었습니다. 그 혼을 이어받은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할 날이 기다려지는 이유지요.

 

“1936년 가을 함형수와 나는 둘이 같이 통의동 보안여관이라는 데에 기거하면서 김동리, 김달진, 오장환들과 함께, ‘시인부락’이라는 한 시의 동인지를 꾸며내게 되었다.”                           

 

                                                                               - <서정주 문학전집> 3권 ‘천지유정’ 중에서

 

 

 

“들어와요. 그러라고 열어 둔 문인데, 뭘….”

 

연세를 가늠하기 힘들 만큼, 여전히 얼굴이 고운 할머니께서 환하게 웃어 주십니다. 어른 두 명이 서서 가리면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작은 입구. ‘대오서점’이라는 간판만 보고 덜컥 문을 열었다가 깜짝 놀랐지요. 세상에! 남의 집 마당으로 통하는 비밀의 문일 줄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마치 앨리스가 시계 토끼를 따라 이상한 나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대오서점’은 한 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 헌책들이 빼곡하게 꽂혀 있습니다. 1950년에 문을 열어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헌책방으로 기록되고 있어요. 게다가 서울시에서 선정하는 ‘미래유산’ 후보라고요. 헌책방을 운영하시던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에도 몇 년을 더 낡은 책과 함께하신 할머니. 하지만 작년 여름부터 이곳의 시계는 더 이상 똑딱이지 않습니다.

 

 

 

 

다만 할아버지와 할머니 이름의 가운데 글자를 따서 지었다는 ‘대오’만이 누하동의 향기를 쫓아 온 이들을 반길 뿐이지요. 이 작은 서점이 이토록 오랜 세월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애틋한 마음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사진 찍고 쉬었다 가요. 내가 허리가 아파서 안마 기계를 돌리다 나왔거든….”


할머니의 지극한 배려 속에 사진도 찍고, 툇마루에 걸터앉아 헌 책 몇 권도 뒤적인 오후. 그러다 덜커덩, 하늘색 미닫이문이 다시 열립니다. 도리어 주인인 냥 인기척을 느낀 저는 그만 자리를 털고 일어났어요.  “할머니,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참 신기한 광경을 보았어요. 반듯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우르르 시장으로 몰려갑니다. 마침 점심시간이고 하니 정말 끝내주게 맛있는 음식점이 있나 싶었지요. 그런데 사람들 손에는 빈 도시락 통이 들려져 있고, 가게를 한 곳씩 돌며 반찬을 하나씩 담더군요.

 

그리곤 낸다는 돈이 바로 엽전, 삼삼오오 모여 도시락을 먹는 곳은 어느 카페. 소풍 나온 어린아이마냥 즐거운 표정이 가득했습니다. 구경하는 재미도 있고, 골라 먹는 즐거움도 쏠쏠한 이곳은 통인시장.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운영되는 ‘도시락카페’가 있는 곳입니다.

 

 

 

 

통인시장 한가운데 위치한 고객만족센터 2층에서 500원 단위의 엽전을 구입할 수 있어요. 그 엽전을 한 냥, 두 냥씩 사용하면서 밥, 국, 반찬을 삽니다. 서너 명이 모이면 웬만한 뷔페가 부럽지 않은 거한 밥상을 차릴 수도 있지요.

 

어머니의 손맛이 느껴지는 맛깔스러운 반찬은 기본, 인사 한 번 기분 좋게 건네면 한 냥으로 두 냥 어치를 살 수도 있는 시장 인심은 덤입니다. 이 맛에 전통시장에 가는 것이겠지요.^^ 게다가 5,000원으로 배불리 한 끼 식사도 해결할 수 있고, 내키는 대로 골라 먹을 수 있으니 채식하는 이들에게도 반가운 점심이겠지요. 이보다 더 알뜰살뜰 할 수가 없습니다.

 

 


 

통인시장이 사람들의 발길을 끄는 이유는 비단 도시락뷔페에만 있지 않습니다. 가게마다 개성 넘치는 디자인 간판 구경하는 재미도 있거든요.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진행한 통인시장의 이야기. 200m 남짓의 작은 시장이지만 쉬이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이유를 알겠더군요. 아기자기한 즐거움이 샘솟는 통인시장으로 놀러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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