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저게 그건가 보다.”
서울시인재개발원(서울 서초구 서초동 소재)에 갔다가, 문득 몇 달 전 봤던 뉴스가 떠올랐습니다. 서울시에서 서울시인재개발원 다솜관(기숙동)의 창문 30개를 태양전지로 만들었다는 것이죠. 이 창으로 생산할 수 있는 전기의 양은 시간당 800W나 된다고 합니다. 40인치 LCD TV 8대를 동시에, 한 시간 동안 볼 수 있는 정도의 전력입니다.
서울시 인재개발원 다솜관 / 출처 / 서울시
“저 창으로 과연 전기를 생산할 수 있을까?”
아무리 봐도 그저 평범한 창일뿐 입니다. 마음속에서 의심이 불쑥불쑥 머리를 치켜들었죠. 보통 태양광주택이나 태양광아파트를 보면, 옥상에 네모판 모양의 발전 설비를 하나씩 달고 있기 마련입니다. 아마도 제 의식 속에는 이 커다란 발전 설비가 ‘태양광발전’의 상징으로 굳게 자리 잡았나 봅니다.
창문으로 전기를 만들다, 염료감응 태양전지
우리가 생각하는 태양광발전설비 없이 어떻게 태양광 발전을 할 수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물어봤더니.. 창으로 전기를 만드는 비결은 ‘염료감응형 태양전지'를 이용한 것이라고 하더군요. 기존 실리콘 태양전지와는 종류가 다른 것이죠. 국내에서 염료감응형 태양전지를 건물에 실제로 도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네요.
서울시인재개발원에 설치한 염료감응형 태양전지 창
염료감응형 태양전지는 유리, 플라스틱, 필름 같은 소재로 만든 케이스 안에 염료를 주입해 만듭니다. 염료는 태양빛을 받으면 전자를 내 놓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염료에서 나온 전자는 자유롭게 돌아다니다가 케이스에 붙어 있는 나노결정 반도체 산화물로 이동합니다. 전자는 이어 외부 회로를 따라 움직이게 되죠. 전자의 이동, 다시 말해 전기가 생기는 것입니다.
케이스를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염료감응형 태양전지의 모양은 변합니다. 심지어 아주 얇은 박막형태로도 만들 수 있죠. 이렇게 얇은 태양전지를 설치하는 데는 큰 공간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곡면에도 얼마든지 붙일 수 있죠. 주입하는 염료의 색만큼 다양한 색의 태양전지를 만들 수도 있답니다. 알록달록한 태양전지로 창을 만들면,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만큼 화려하겠죠? 여기서 우리가 쓸 전기가 생긴다니 정말 멋진 일이 아닐까요?
염료의 색에 따라 다양한 색의 전지를 만들 수 있다 / 출처 / 위키미디어
김영성 서울시 기후환경본부 환경정책과장은 “염료감응형 태양전지는 아파트나 고층 건물이 많은 서울의 도시 특성에 적합한 기술”이라며 “에너지 효율은 물론이고 심미성을 갖추고 있어 서울형 신재생에너지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습니다. 앞으로 서울에서 창으로 태양광 발전을 하는 건물을 더 많이 볼 수 있겠네요.^^
염료감응 태양전지, 원조는 따로 있다?
‘염료가 태양빛을 흡수하면 전자를 내 보낸다’
이러한 염료감응형 태양전지의 원리, 어디서 한 번 들어 본 것 같지 않으신가요? 네. 바로 식물의 광합성입니다. 식물도 태양빛을 받으면 ‘엽록소’가 빛을 흡수해 전자를 내보내고, 전자는 계속 이동하며 전기를 만들죠. 식물은 이 전기에너지를 양분을 만드는 데 씁니다. 모든 과정이 1000조 분의 1초 안에 끝난다니 놀랍지 않나요?
'오리엔탈 호넷'의 모습. 갈색 몸에 큰 노란 줄무늬가 있다 / 출처 / 위키미디어
이런 마법의 염료는 식물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랍니다. 얼마 전에는 ‘오리엔탈 호넷’이라는 벌의 등에서도 발견됐죠. 갈색 몸에 노란 줄무늬가 있는 벌로, 아프리카와 남아시아 지역에 살아요. 이스라엘 텔아비브대의 마리안 플로트킨 교수팀이 이 벌을 원자현미경으로 관찰한 결과, 벌의 몸 표면의 노란 부분에서 ‘잔소테린(xanthopterin)’이라는 염료를 발견했답니다. 잔소테린의 색이 노랗기 때문에 벌의 줄무늬가 노란색으로 보이는 것이죠.
노란 줄무늬 부분에 태양 빛을 흡수해 전기를 발생시킬 수 있는
염료인 '잔소테린'이 있다 / 출처 / 위키미디어
플로트킨 교수팀이 잔소테린으로 태양전지를 제작하자, 실제로 태양빛을 받아 전기를 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다비 말해 '오리엔탈 호넷'은 잔소테린으로 빛에너지를 전기로 변환하는 태양전지를 몸에 지니고 있는 셈입니다. 오리엔탈 호넷은 이 태양전지로 에너지를 보충하기 때문에, 이른 아침에 활동이 활발한 대부분의 벌과 달리 한낮에 가장 활발히 움직인다고 해요. 이 연구결과는 독일의 과학학술지인 ‘자연과학지’ 2010년 12월호에 발표됐는데요. 그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이제 태양광이라는 신재생에너지에 눈을 뜬 인간보다 앞서, 생물은 태양광 발전이 좋다는 사실을 알고, 오랜 세월 동안 이용해 왔던 것이죠. 놀라운 자연의 신비~!
태양광발전, 생물학에 손을 내밀다
이런 생물의 태양전지를 놓칠 수는 없죠. 과학자들은 더욱 친환경적이고, 효율이 좋은 염료감응형 태양전지를 개발하기 위해 여러 생물염료를 찾는 중 입니다. 미국 브리검영대의 리처드 와트 교수는 엽록소뿐 아니라 생물의 다른 단백질도 햇빛과 반응하면 에너지를 수확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새로 알았습니다. 스웨덴 찰머스공대의 자카리 치라그완디 교수팀은 해파리 ‘아에쿠레아 빅토리아’에서 추출한 녹색형광단백질을 이용해 태양전지를 제작하기도 했죠.
빛을 내는 해파리 '아에쿠레아 빅토리아'. '크리스탈 해파리'라고도 불린다.
연구는 새로운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지난달 미국 캔자스주립대 화학과의 스테판 보스만 교수팀은 기존에 쓰던 태양전지 염료에 ‘마이코박테리움 스메그마티스’라는 세균의 단백질을 함께 섞어 봤습니다. 그 결과 일반 염료감응 태양전지의 효율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연구팀은 세균의 단백질이 전자가 잘 이동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미국 실리콘밸리 광장 건물의 한화솔라원 영상
'태양전지'하면 한화도 할 이야기가 많습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정받고 있는 한화의 태양광은 지난해 `폴리실리콘-잉곳-웨이퍼-태양전지(셀)-모듈-태양광발전`에 이르기까지 태양광 사업의 전 분야에 걸쳐 수직계열화를 완벽하게 갖춰 화제가 되었는데요. 4월에는 실리콘밸리에 '한화솔라아메리카'라는 태양광 연구소를 설립, 차세대 태양전지 등 미래 태양광 기술을 선도할 원천기술 개발에 주력함으로써, 기존 한국과 중국의 태양광 연구소와 역할분담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계획이라고 해요. 태양광 분야에서는 확실히 선두 기업으로 자리매김 한다고 볼 수 있는데요, 이를 통해 놀라운 성과를 조만간 확인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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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선미 l 동아사이언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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