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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예술이 된 예술가 앤디워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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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행사에 이런 난리법석은 하나의 사건이 됐습니다. 청중들이 워홀의 작품을 보러 온 게 아니라 오히려 앤디 워홀과 그의 슈퍼스타, 에디 세즈위크를 보러 온 것. 워홀 스스로도 이날의 난리 법석을 '우리가 미술 전람회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바로 그 전시였다'고 회고 하고 있어요. 1959년부터 시작된 그래픽 디자이너 앤드류 워홀라의 예술가로 재탄생이 이 날에야 비로서 완료된 것이죠. 에술가 앤디 워홀은 이렇게 탄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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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로 거듭 태어난 앤디워홀은 인간이 아니라 유령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그것도 에술의 유령으로, 앤드류 워홀라라는 가난한 체코게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나 에술가 앤디워홀로 거듭나면서 일상적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스스로 에술의 화신이 된 사나이죠. 인간으로 워홀라의 인생은 전형적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이민 2세였어요. 피죽도 못 먹는 피츠버그의 가난한 이민자의 아들이 생활고에 허덕이며 그 지역 대학을 겨우 마치고 뉴욕에 올라와서 돈과 명성을 거머쥐었죠. 


그래픽 디자이너로 대성해 광고계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는 명성도 쟁취했고, 맨하튼에 단독주택도 샀죠. 그런데 미국 광고협회에서 대상을 몇 번이나 수상해 광고계의 마이더스 손이 된 워홀라는 밑도 긑도 없이 디자인을 버리고 예술계로 뛰어 듭니다. 광고계의 슈퍼스타가 무명의 예술가로 변신을 시도한 것인데, 이 변신이야말로 현대 미술계에 가장 역사적인 순간으로 기억될 만한 사건이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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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들어오면서 그래픽 디자이너에서 순수예술가로 전업했으나, 에술의 세계 밖에서 에술 세계 안으로 진입은 순조롭지 않았습니다. 홍콩에서 맞춘 수제양복과 이태리에서 맞춘 구두만 고집할 정도로 까다롭게 멋을 부리던 워홀은 에술계로 들어오며 검은 진과 터틀넥 스웨터만 입고 나중엔 특정한 가발까지 쓰며 생사고락에서 벗어난 듯 단조로운 목소리로 머뭇머뭇 뭐라고 해도 좋을 그런 말만 하는 초연한 인간으로 변모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우선 스스로를 예술의 대상으로 만들어 가며 자신을 기호화 해나가기 시작합니다. 워홀은 이러한 자신의 변화 과정을 "변한 것이 있다면 내가 내 작업을 백화점 쇼윈도에서 갤러리로 옮겼을 뿐, 내 스타일이 변한 건 없다"고 했어요. 그러나 쇼윈도에서 갤러리의 이동이야말로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이동인 셈인데, 이런 이동이 단순히 길을 가다 보도에서 인도로 뛰어드는 정도로 가능한 게 아닙니다. 


이런 질적으로 다르게 구성된 세계로 이동을 하려면 그야말로 생사를 건 도박처럼 이전 세계와 그 세계 속에서 하던 관행에 대한 단절적 결단과 수행이 불가피한 법이지요. 이러한 도약이야말로 바로 워홀이 현대 미국미술에 일으킨 미술혁명이죠. 오늘날 워홀에 얽혀있는 모든 전설과 신화는 이 도약에서 비롯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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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홀이 영웅처럼 숭배하던 뒤샹이 남자의 소변기를 거꾸로 세워 갤러리에 전시하면서 소위 일상 생활용품을 예술 작품으로 전환시켰다면, 워홀은 자신을 예술계 안에 집어 넣으면서 스스로 예술의 대상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전혀 예술 같지도 않은 것이 예술로 전시되고 그의 너무나 평범한 작품과 있는 듯 없는 듯한 워홀의 행색에 미술계 사람들보다는 미술계 밖의 사람들이 먼저 열광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워홀이 보통의 미국인이라면 누구나 항상 이해할 수 있는 인물이나 일상생필품을 소재로 하고 그들의 삶의 형식을 주제로 했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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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워홀이 관객들이 아는 것과 같은 것을 알고 있고, 또 그들이 감동 받는 것에 똑같이 감동하고 있다는 것을 청중이 알게 되면서 청중과 워홀 간에 어떤 자연스러운 유대감이 형성되고 그 유대감이 워홀이 스스로 아이콘이 되어 버림으로 공고화 된거죠. 


워홀의 작품은 현대 미술에 대해 아무런 지식이나 정보가 없는 사람도 쉽게 좋아할 수 있어요. 워홀이 말한대로 "앤디 워홀의 모든 것을 알고 싶다면 내 그림과 영화 그리고 나의 표면만 봐라. 내가 거기에 있다. 그 외에는 어디에도 없다"고 했어요. 그럼에도 워홀은 관객과 달라도 너무나 달라요. 관객이 워홀처럼 쉽게 따라한다고 해도 워홀은 아니죠. 워홀에 대한 신비가 이렇게 빤~한것 너무나 흔한 것 그리고 더없이 명백한 데 감추어져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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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예술적인 대상이 비예술적인 방식으로 비에술적인 워홀에 의해 예술이 되기 위해서는 기존의 예술이라 부르는 제도적 형식으로는 불가능했습니다. 불가능한 것이 예술이 되기 위해 우선 워홀이 예술가로 변해야 했고, 비예술적이었던 그래픽 디자인이 순수에술이 되야만 했으며, 워홀에 의해 복제되어 제작된 이미지들이 일상생활에 바탕을 둔 이미지로부터 단절되고 고립되어 독자적인 이미지가 되어야 했습니다. 워홀은 이러한 난제들을 예에술의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오면서 당시 예술계를 지배하는 흐름에 자신을 맞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과 함께 다양한 자신의 세력을 거느리고 그들과 함게 노닥거리며 다른 예술가들이 사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예술을 수행해 비예술적인 것을 예술화 시키면서 스스로 예술가가 되갔습니다. 


마릴린 먼로, 앨비스 프레슬리, 재클린 케네디, 엘리자베스 테일러 등 워홀의 대표적 초상화 작품이야말로 매스 미디어에 의해 대량 복제되고 배포된 누구나 알고 있고, 또 누구나 알기를 열망하는 스타들의 이미지를 워홀이 실크 스크린을 사용하여 재생한 것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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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재생된 이미지가 인덱스적인 가치를 넘어서면서 아이코닉한 이미지로 자립되어 버렸습니다. 즉 매스 미디어에 의하여 일반인들의 심상 속에 새겨진 스타들의 이미지가 워홀에 의해서 그 이미지들이 원래 만들어지는 현장이나 맥락에서 분리되어 독립되면서, 그 자체가 아이콘으로 만들어져 나간 것입니다. 마치 먼로나 엘비스 프레슬리, 미키마우스나 슈퍼맨처럼 각종 미디어를 통해 일반인의 심상에 각인된 영화나 TV에 나온 주인공들이 그 이미지를 미디어나 시대적 맥락에서 독립되어서, 하나의 주체적이고 자립적인 우상으로 그려지는 것이죠. 워홀의 미키마우스나 레닌의 초상화를 보면 미키마우스가 디즈니의 만화와 별로 상관없는 자체의 아우라를 가진 얼마나 쿨한 미키마우스로 보이는지, 레닌이 공산주의 혁명의 아버지로서의 이미지가 아니라 여느 패션모델이나 할리우드 스타보다 더 세련되고 쿨한 이미지로 보이는지 놀라울 정도입니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워홀에서 초상화를 주문하는 이유도 워홀이 그리기만 하면, 평범한 사람의 초상이 그를 한정젓는 일상의 범속한 현실을 뒤어 넘어 가 그 평범한 사람을 록 가수나 무비스타, 불세출의 정치가와 같은 아우라를 부여해 주는 마술을 부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워홀이 남기고 간 수많은 초상화들을 우리가 보면서 매혹 당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아직 워홀의 주술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기 대문이에요. 워홀 귀신이 우리 안에 들어 있는 거죠. 앤디 워홀 귀신들이 현대 미술계를 온통 휘젓고 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인 것입니다. 



글 / 신지웅



*이 내용은 대한생명 웰빙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the BEST'의 내용을 재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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