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교동 근처가 빌딩숲이 되기 전, 정문에서 5분 거리에 있는 허름한 먹자골목이 있었습니다. 넉넉한 인심으로 감자탕을 고봉으로 주시던 자매 할머니집, 배고플 땐 식욕을 당기는 짭짜름 한 맛을 풍기지만 식사 후 사무실로 돌아갈 때에는 비린 냄새에 인상을 찌푸리게 만들던 고갈비집(고등어구이집), 밤 늦은 시간까지 동양화 삼매경에 빠지게 했던 빈라덴숙소(내부구조가 개미굴 같아서 들어가면 출입문을 찾기가 어렵다 해서 붙여진 별칭) 등이 즐겨찾던 곳입니다. 이 중에서도 하동관(河東館)과의 인연은 좀 묘했습니다. 선배들에게 이끌려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갔던 하동관 곰탕의 첫 인상은 무척이나 특이했죠.
옛 한옥 건물의 삐걱거리는 나무문을 들어서면 시장터 같은 왁자지껄한 분위기에 하동관 곰탕 색은 숭늉처럼 투명했습니다. 깍국(깍두기 국물) 주전자만 들고 다니는 깍국 총각들은 왜 철가방도 아닌데 흰색 가운을 입었는지 우스꽝스러웠고요. 빨리 먹고 가라고 그랬는지 곰탕 국물은 왜 그리 미지근하며, 미끄러운 놋그릇을 놓치지 않으려는지 엄지손가락을 국물 속까지 푸~욱 담 그는 배려(?)하며…. 약간은 이상하고 손님 대접을 못 받았다는 불쾌감까지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동관 곰탕을 먹으면 먹을수록 왠지 모를 친근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이유는 곰탕이 가지는 솔직함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인스턴트, 조미료 음식에 길들여진 나에게 밍밍한 누룽지 맛을 내는 친구같은 하동관 곰탕이 곁에 있어서 조금은 위안이 됐던 것 같습니다. 그런 하동관 곰탕이 나중에 알고 보니, 만화가 허영만의 <식객> 1권에 제일 먼저 등장하는 곰탕집이었고, 그 날의 국물이 다 팔리는 3~4시가 되면 문을 닫기 때문에 이 사실을 모르고 방문하는 손님들은 빈 손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놀라기도 했습니다.
매일 출퇴근 하면서 보는 청계천에 대해 별 감동을 느끼지 못하듯 우리 주변에 가까이 있어서 그 소중함을 몰랐던 하동관 곰탕. 청계천 일대 재개발로 인해 명동 입구로 이사 가면서 하동관 곰탕의 가격도 올랐다고 합니다. 하동관 곰탕이 명동으로 옮긴 뒤 몇 분 더 걷는 것이 귀찮아서 자주 못 가고 있는데 추운 겨울에 뜨끈한 하동관 곰탕 생각이 많이 나네요. 음식을 함께했던 사람들의 추억이 더해져서가 아닐까 합니다.
신입시절 선배들은 곰탕 한 그릇 먹는데 왜 그리 설명이 많았던지. 송송 썰은 파를 많이 먹어야 한다는 둥, 기름이 싫으면 얘기하면 된다는 둥, 고기는 따로 빼서 소금에 찍어 먹어야 맛있다는 둥, 기다리는 손님과 눈이 마주치지 않도록 시선처리를 해야한다는 둥…. 이런 것들도 시간이 지나면 추억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가격이 더 오르기 전에 하동관 곰탕에 말 안 듣는 후배들 데리고 가야겠습니다. 그 옛날 선배들이 저한테 그랬듯이 5분 만에 식사 끝내는 비법과 알량한 하동관에 대한 저의 경험을 자랑해 볼 겸해서요.
*Culture 추억이 있는 식당
음식의 맛을 결정 짓는 것은 때로 추억이 절반입니다. 언제 먹어도 푸근해지는 한화인들의 '소울푸드'를 만나보세요. 한화그룹 사보 한화한화인에서 매월 한 곳씩 추억의 식당을 선정해 소개합니다. 이번에 소개해드릴 곳은 깊은 국물 맛이 일품인 곰탕집입니다. 하동관 곰탕은 허영만의 '식객' 1권에 제일 먼저 등장한 맛집이기도 하죠.
글 ㈜한화 화약부문 인사운영팀 김영식 팀장
* 이 컨텐츠는 한화그룹 사보 한화한화인 '추억이 있는 식당' 내용을 재구성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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