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베를린>이 관객수 700만을 돌파했습니다. <피도 눈물도 없이>, <아라한 장풍대작전>, <부당거래> 등에서 독특한 액션 스타일을 보여주며 한국의 '액션키드'로 불린 류승완 감독이 결국 한국 액션 영화 흥행사를 다시 썼네요! 첩보 액션은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장르지만 이런 한계를 극복하고 수 많은 관객의 호평을 받을만큼 영화 베를린은 다양한 매력을 품고 있습니다. 하정우, 한석규, 류승범 그리고 전지현에 이르는 매력적인 배우들, 경계도시 베를린의 쓸쓸한 풍광, 이야기의 힘을 증폭시키는 액션의 쾌감. 이 모든 매력의 총합은? 류승완 감독이죠. 유명한 감독보다 유능한 감독이 되고 싶다는 류승완 감독을 직접 만나봤습니다!
[출처-영화 '베를린' 공식 사이트]
2010년 <부당거래> 이후 3년 만에 내보인 그의 신작은 다소 의외의 무대에서 펼쳐졌습니다. 왜 베를린인가? “<부당거래>(2010)를 완성하고 나서 문득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혹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돌아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막연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영화를 만들던 동네를 확 벗어나고 싶었죠. ‘지금까지 손 댄 적 없는 다른 장르의 영화를 만들어보자’, ‘어떤 장르가 좋을까’, ‘스파이 스릴러 영화는 어떨까’ 이런 식으로 생각이 뻗어나갔어요. 예전부터 스파이 스릴러 장르 영화를 좋아했거든요.”
“제3국을 배경으로 음모가 뒤엉키고, 액션이 터지는 영화.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죄다 마음에 차지 않는 거예요. 그러다 영화제 때문에 베를린에 가게 됐는데, 며칠 간 여행하면서, ‘여기다!’ 라는 감이 왔죠.” 20세기 분단의 상징이었던 도시. 우리에겐 ‘간첩사건’의 배경으로 인식되어 있기도 한, 조금은 차고 눅눅한 도시(북한으로 납치되었던 신상옥 감독이 목숨 걸고 탈출한 도시가 베를린이다), 버려지거나 도망친 사람들이 잠시 몸을 숨길 수 있는 도시, 그 뉘앙스에 류승완 감독은 자극을 받았다고 합니다. 특히 베를린의 북한 대사관이 그에게는 영감의 포인트였던 거죠.
▲20세기 분단의 상징 '베를린 장벽'
“북한의 대사관 중 가장 큰 규모의 공관이 베를린에 있어요. 여행하면서 우연히 북한 대사관 앞을 지나가는데, 한 남성이 공관에서 나와 공관 밖의 인터폰을 고치고 있더군요. 정말 평범한, 우리와 똑같은 아저씨였는데, 그는 ‘북한 사람’이잖아요. 인사를 나누고 싶었는데 차마 입이 안 떨어지더군요. 한두 걸음 다가서서 손만 내밀면 악수를 할 수 있었는데도, 마치 자석의 같은 극이 서로를 밀어내는 것 같은 거리감을 느꼈어요.” 우리의 인식 속에 아직도 존재하는 벽. 이 벽을 느낀 순간 이야기의 큰 얼개가 그려졌습니다. 서로를 명확히 ‘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남과 북의 첩보원이 맞부딪치며 얽히는 이야기. 그 배경으로 베를린이 최적의 장소라고 여겼다고 합니다.
그렇게 이야기가 만들어졌습니다. 다음은 배우들이 문제였습니다. 하정우, 한석규, 류승범, 전지현이라는 배우들을 모아낸 것은 역시 역시 ‘류승완’이라는 감독 이름 때문이었을까요? 그는 이 질문에 “천만에!” 라고 얘기합니다. “나는 힘없어요(웃음). 시나리오를 보고 한석규 선배가 가장 먼저 참여하겠다고 나섰죠. 개인적으로 한석규 선배와 꼭 작업하고 싶어서 전부터 간간이 연락을 드리긴 했지만, 이렇게 선뜻 참여해주실 줄은 몰랐어요. 하정우와 류승범은 ‘한석규 선배와 함께 연기한다면 무조건 한다’면서 합류했고. <도둑들>(2012)을 마친 전지현이 가장 마지막에 출연을 결정했어요. 캐스팅은 그야말로 운이 좋았다 싶어요.”
물론 영화가 공개되기 전에 일각에서 전지현에 대한 우려도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기가 센’ 세 남자배우 사이에서 전지현이 그저 아름답기만 한 ‘꽃’으로 전락하는 건 아닐까 걱정했던 것이죠. 그렇지만 그는 배우 전지현만의 매력을 이끌어 낼 자신이 있었다고 합니다. “저음의 목소리, 화장기 없는 파리한 얼굴로 전지현은 굉장히 매력적인 인물을 완성했어요. 배우 전지현의 매력은 오랜 연기생활을 해왔음에도 고정된 틀이 없다는 거예요. 그녀는 물이죠. 어떤 그릇에 담기느냐에 따라 모양이 자유자재로 바뀌는. 더 훌륭한 것은 흐르는 물이에요. 전지현은 지금 연기에 변화를 추구하는 열정이 끓어오르고 있고, <베를린>은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관객들은 미처 상상치 못한 전지현의 다양한 얼굴을 보게 될 거라고 장담해요.”
[출처-영화 '베를린' 공식 사이트]
<베를린>에 출연하는 배우들은 '센' 매력 때문에 류승완 감독은 아예 배우들의 앙상블을 맞추는 것 자체를 포기했다며 웃습니다. “세 배우의 연기력에 대해선 ‘훌륭하다’라는 말이 무의미할 정도죠. 상대의 연기에 본능적으로 반응한다는 훌륭한 매력을 가지고 있고요. 사실 감독으로서 할 일이 없었어요. 각기 다른 배우들의 개성을 내 통제 안에 몰아넣으면 개성이 사라진다고 판단했어요. 차라리 각 배우의 냉탕과 열탕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운이 참 좋아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부터 이어져 온 ‘류승완표 액션’ 또한 화제가 됐습니다. 클라이맥스에 등장한 하정우와 류승범의 ‘총을 도끼처럼 휘두르며 맞붙는 맨몸 액션’은 그의 고집으로 완성된 장면이었습니다. ‘처음 보는 액션’을 만들겠다고 고집 부려 정두홍 무술 감독이 죽을 만큼 고생했다고 합니다.
매혹적인 이야기, 홀리는 배우들, 그만의 액션을 완성한다는 고집 속에서 만들어진 영화 베를린은 진정한 ‘류승완다움’을 보여준 영화지만 그는 그 수식어가 늘 낯설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내 영화 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부당거래>를 좋아하는 관객이 있고, <아라한 장풍 대작전>과 <짝패> 같은 영화를 만들어달라고 하는 관객도 있어요. 각각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가 ‘류승완다운 영화’라고 이야기하죠. 하지만 나는 계속 변화하고 있어요. 데뷔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이 너무 요란해서, 오히려 지금까지 좌충우돌 한 것 같아요(웃음).” 그래서 그는 한화 가족들에게도 자신을 영화로 존중 해주기를 부탁합니다. “류승완을 기억해주시기 보다 ‘이 영화 괜찮네, 감독이 ‘류 아무개’라며?’라는 말이 훨씬 좋아요. 제가 ‘유명한 감독’이기보다 ‘유능한 감독’이 될 수 있도록 지켜봐 주셨으면 합니다”
어린 시절 그는 ‘먼 미래’를 봤습니다. 거장이 되고 싶고, 걸작을 만들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현재’를 봅니다다. 류승완 감독의 머리 속에는 온통 지금 만들고 있는 영화, 다음에 만들 영화 생각뿐이죠. 그러다 어느 순간 영화를 너무 못 만드는 감독이 되면, 또 다른 행복한 삶을 찾아갈 준비를 하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가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 ‘제과제빵’이라고 하네요. 10년째 인터뷰에 등장하는 그의 ‘제과제빵’ 꿈은 듣기에 달콤하지만 그를 끊임없이 채찍질하는 원동력입니다. “더 이상 관객이 찾아주지 않아서 영화감독을 못하게 되면 어떤 직업으로 먹고 살 것인지 항상 마음에 두고 있어요. 그런 날이 오지 않으면 좋겠지만요(웃음).”
<다찌마와 리>(2000)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전 이 충격적인 제목의 단편영화로 류승완을 만난 이들도 많았을 것이다. 목숨을 바쳐 약자를 수호하는 전설의 사나이 ‘다찌마와 리’의 과장된 복고·코믹·멜로·액션물로 그는 단번에 매니아를 거느린 감독이 됐다. "천인공노할 무리들아! 인간 사표를 써라!"라는 명카피가돋보인다.
<남자니까 아시잖아요. ‘Hey, Men~’>(2005)
‘차별 받고 있는 소수의 이웃을 위한 인권영화’라는 주제로 만들어진 다섯 편의 옴니버스 영화 <다섯개의 시선> 중 한 작품이다. 성차별, 외국인 노동자 비하, 동성애 혐오, 외모차별, 학력차별 을 집대성해 놓은 주인공 우식을 통해 인권에 대한 짧고 강한 풍자를 전한다. 배우로 활약한 임순례 감독이 선사하는 마지막 반전이 압권.
<부당거래>(2010)
대한민국을 뒤흔든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을 ‘만들어낸다’는 데서 출발한다. 연쇄 살인 사건, 권위계층의 부정부패와 검사와 스폰서 문제, 대형 건물 입찰 비리 문제 등 정치, 사회적인 이슈들을 흥미롭게 버무려두었다. 치밀하고 강렬한 이야기의 매력에 빠져 볼 만하다.
글 / 박혜은 <무비위크> 편집장
사진 / 김진웅 STUDIO TEO
* 이 컨텐츠는 한화그룹 사보 한화한화인 '희망인터뷰' 내용을 재구성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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