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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라이프/문화/취미

나무 칼럼니스트 '고규홍', 그가 12년 직장 그만 둔 이유는?

4월 5일은 어린 아이도 기억하는 식목일입니다.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 나무 심기 준비 하느라 분주한 하루인데요. 지금은 비록 공휴일은 아니지만, 식목일과 나무의 소중함은 세월이 지날 수록 더욱 깊어집니다. 특히나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북극의 얼음이 녹고, 몰디브 해안의 해수면이 높아지는 염려가 커지고 있는 지금의 시점에서는 더욱 그러하죠.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자연이 훼손되고, 오히려 인간이 다시 위험에 처하게 되는 지금, 나무의 소중함, 애뜻함을 먼저 깨닫고, 나무의 동반자 역할을 하고 있는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를 만나보았습니다.

나무가 말하였네,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는 누구든 선택이라는 것을 한다

나무야 나무야 겨울 나무야 눈 쌓인 응달에 외로이 서서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겨울을 바람 따라 휘파람만 불고 있느냐… 나무 칼럼니스트, 고규홍씨는 궁금했습니다. 생크림 같은 눈옷을  입은 겨울 나무는, 가로수에 늘어선 벚꽃은, 하늘 아래 청청한 여름 소나무 숲은, 한껏  멋을 부린 단풍나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말이죠. 

12년 전, 고규홍은 40세라는 나이에 다른 인생을 살 결심을 했습니다. 누구는 이직을 하고, 이사를 할 때에도 치밀한 계획을 세운다지만 그에게 그런 비장한 각오는 없었습니다. 40세에 인생을 바꾸지 않으면 그가 세상을 읽을 수 있는 코드는 한 가지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새벽 안개가 짙은 고속도로를 달리는 기분이었죠. 바쁘게 이어지는 하루하루. 언젠가부터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크게 휩쓸려가고 있다는 기분에 가슴이 점점 퍼석해졌습니다.

어느날 그는 계획도 없이, 경제적 여유도 없이 12년 동안 해온 일간신문 기자를 사표 한 장으로 마감했습니다. 

“누구도 믿지 않았어요. 당시가 외환위기로 인해 구조조정을 마친 이듬해였는데, 동료 중 절반이 직장을 잃었죠. 그때는 자리를 지킨 것이 전쟁에서 살아남았다는 증표나 다름 없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이렇다 할 계획도 없이 조직을 나간다는 것이 남들 눈에는 호사스러운 객기로 비춰질 수도 있었을 겁니다. 사람들이 물었어요. 왜 그만두냐고, 나가서 뭐 할 거냐고. 그 질문에 책 읽으려고…라고 답했습니다. 당시 문화부 기자였으니 출판된 책이며 저자를 만나는 것이 업이었는데 책 읽으려고 직장을 그만둔다니... 저를 잘 모르시는 분에게는 오해 살 만한 대답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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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이 마지막 단장을 마친 가을 날이었습니다. 한 달 동안 처리되지 않던 사표가 수리된 날, 늦둥이 막내 딸이 태어났죠. 첫 아들이 태어났을 즈음 시작된 그의 인생 1막인 기자 생활이 막을 내리고 인생 2막이 조용히 열렸습니다. 막내 아이의 인생을 등에 업었으니 지금이야 담담히 이야기하지만 12년 전 현실은 그저 현실이었음을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정리할 것을 정리한 남은 퇴직금으로 수목원에 있는 작은 집 한 채를 빌려 두 달을 묵었습니다. 남들이 물으니 생각나는 대로 답했지만 그는 실제로 두 달을 꼬박 책만 읽었죠. 그리고 어느 날, 자연의 품안에서 두 달을 지낸 그에게 나무가 말을 걸었습니다.

    “내가 궁금하지 않나요?” 

겨울에 피는 목련나무야

“목련을 좋아해요. 어릴 때 동네에 목련나무가 많아서였던 것 같기도 하고요. 수목원의 게스트 하우스에서 창문을 내다보았는데 그날은 싸락눈이 내렸어요. 목련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조용히 내리는 눈을 맞으며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목련은 왜, 아무도 보지 않는 겨울에 홀로 꽃을 피우는 것일까. 무슨 사연이 얼마나 깊기에… 이제까지 사람을 취재했는데, 나무의 인생이 궁금해지더라고요.” 

그가 나무와 인연을 맺을 수 있었던 것은 아내 덕분이기도 했습니다. 그가 보낸 편지에 아내가 답하길, 모두가 자연을 지배하고 정복하려는 대상으로 바라본다지만 자연의 품에 안긴 당신은 자연을 동화되는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했던 것. 격려의 편지인 아내의 목소리는 그가 나무 곁으로 더 가까이 가도록 인도했습니다. 

“서울로 돌아와서 나무를 노래한 시를 찾기 시작했어요. 평소에 시를 좋아해서 시집을 꽤 가지고 있었는데 나무와 관련한 시가 참 많았어요. 신기한 일이지요. 이미 읽은 시였을 터인데 마음속에 나무가 자리 잡으니 시 안의 구절이며 단어가 떠올라 가슴에 알알이 맺혔어요. 시 안에 있는 나무를 직접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2년간의 기자 생활을 정리하고, 12년간 나무 칼럼니스트로 살아온 고규홍의 두 번째 인생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나무를 만나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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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만나러 가는 길은 편하지 않았습니다.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나무를 만나러 가는 길에서 보냈죠. 교통사고가 나기도 하고 발을 헛디뎌 목발을 짚기도 했습니다. 차가 다니지도 않는 깊숙한 곳에 있는 나무는 본래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뿐인데 어느 날은 카메라며 렌즈며 장비가 든 18kg 남짓한 배낭이 더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그가 짊어진 인생의 무게처럼 말이죠. 

“육체적으로 힘든 부분도 있지요. 대부분 길 위에서 보내니 사고의 위험이 있기도 하고요. 목발의 도움을 몇 번 받기도 했지만 그 몸으로도 운전을 해서 나무를 만나러 갔네요. 다른 부분은 아마도 외로움일 겁니다. 고속도로를 달리며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외로움, 남루한 여관방에 고단한 몸을 맡기러 가는 어떤 날은 더 그렇지요. 그런 날은 소주 몇 병 사 들고 들어갑니다.”

나무의 날숨이 그리운 그는 나무를 찾아 다니며 얻은 깨달음을 세상에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책으로, 일간신문의 고정 칼럼으로, 대학 강단에서의 (그는 현재 한림대와 인하대의 겸임교수이기도 하다) 가르침으로 말이죠.
겨울에 핀 목련이 내준 인연은 나무의 나이테가 켜켜이 쌓여가듯 깊어져 갔습니다. 

“글쎄요. 깨달음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자아를 발견하기 위해 나무를 만나러 가는 것은 아니니까요. 산이 거기에 있기에 산으로 가는 누군가처럼 저 또한 나무가 있기에 나무를 만나러 갑니다. 나무는 제게 깨우치라고 강요하지 않지만 제가 깨달음을 얻는 부분은 무척 많지요. 400~500년 된 나이가 많은 나무를 만났을 때 더욱 그런 생각이 듭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렇게 나이 든 나무도 아주 조금씩 살이 올라 부피도 커지고 키도 커집니다. 아주 아주 조금씩이라도요. 그런데 사람은 참, 변하지를 않지요.” 

감나무로 태어나리

어떤 나무를 좋아하십니까? 그는 다시 태어난다면 어떤 나무로 태어나고 싶으냐는 물음으로 대답을 대신했습니다. 수없이 나무에 관한 책을 엮어내고, 일간신문에 나무를 만나는 이야기로 고정 칼럼을 쓰고 우리나라의 이름난 나무는 모두 만났을 그는, 그의 온화한 미소와 꼭 닮은 나무로 태어나고 싶노라 했습니다. 시골 어느 집 마당에나 있는 감나무로 말이죠. 

“저는 감나무가 참 좋아요. 시골에 가면 마당에 감나무가 있어요. 누가 심었는지, 언제부터 있었는지 집 주인도 잘 모르는 감나무가 집집마다 있습니다. 늘 곁에 있지만 감나무가 없으면 허전해요. 나무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을 평소 우리는 잘 느끼지 못하잖아요? 하지만 마당을 지키고 있던 감나무가 바람에 휩쓸려 부러지면 가족의 마음은 허전해집니다. 큰 목소리를 내지 않는, 친절하고 다정한, 그런 존재감을 가진 감나무가 저는 참 좋습니다.”

그에게는 꿈이 하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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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뤄질 수 없는 꿈이지만 이루기 위해 살다가겠다고 말하는 그 꿈은 노거수(나이가 많은 나무)로 우리나라 문화지도를 그리는 일입니다. 이미 그가 만난 노거수만 해도 3,000그루. 모두 엮으면 수십 권 분량이 되죠. 노거수 한 그루, 한 그루가 가진 문화적인, 지역적인 의미를 정리하는 것이 그가 이루고픈 마지막 꿈입니다. 

“나이가 많은 나무를 찾아가면 그 나무와 그 마을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들을 수 있어요. 마을의 할머니가 평상에 앉아 풀어내는 나무에 대한 전설이나 옛 이야기를 들으면 무척 재미있고, 신비하고, 마음이 훈훈하지요. 그런 이야기를 엮어내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이번에 우리가 지켜야 할 우리나무, 소나무. 우리가 지켜야 할 우리나무 느티나무… 은행나무라고 해서 세 권의 책이 발간되는데 이 또한 제가 걸어갈 꿈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글에서 사자가 먹이를 잡아 먹을 때에도 자신이 먹을 만큼만 먹습니다. 미리, 많이 잡아 나중에 먹을 것을 저장하지 않지요. 전라도 장흥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노거수가 한 그루 있는데 멀리서 보면 한 그루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세 그루의 나무가 서로를 지탱하며 서 있습니다. 가운데 나무가 위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주변의 두 나무가 옆으로 길을 내어주어 한 그루인 것처럼 멋드러진 형상을 하고 있지요. 참 똑똑하다고 생각해요. 그 세 그루의 나무 중 한 그루라도 다른 욕심을 부렸거나, 다른  두 그루가 힘을 합쳐 한 그루를 밀어냈다면 지금처럼 모습이 아름답지 않았을 거고, 사람들이 벌써 베어냈을 겁니다. 지금 여러분의 곁, 가까이에 있는 나무로부터 인생 길의 혜안을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고규홍 

1999년에 일간신문에서 12년 동안 기자 생활을 하다가 이 땅의 나무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이 땅의 큰 나무>(2003, 눌와), <절집나무>(2004, 들녘), <옛집의 향기, 나무>(2007, 들녘),  <알면서도 모르는 나무 이야기>(2006, 사계절), <주말이 기다려지는 행복한 나무여행>(2007, 터치아트), <나무가 말하였네>(2008, 마음산책), <대한민국 여행사전>(2009, 터치아트), <우리가 지켜야 할 우리나무 느티나무> 외(2010. 다산기획)를 내기도 했다. 답사 중에 찾아낸 경기 화성 전곡리 물푸레나무는 그가 직접 천연기념물 지정을 신청, 2006년에 천연기념물 제470호로 지정됐으며, 그가 처음으로 세상에 알린 경남 의령 백곡리 감나무도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2000년 봄부터 지금까지 줄곧 ‘나무를 찾아서’라는 칼럼을 써서 홈페이지
솔숲닷컴
을 통해 나누고 있으며, 현재 한림대와 인하대에서 겸임교수로도 활동 중이다.


취재 / 한윤정 iPublics    사진 / 김동율

*이 내용은 한화그룹 사보 <한화한화인>의 희망인터뷰 내용을 각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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