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가 큐셀(Q-Cells)을 인수했다는 뉴스를 보며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필자가 2009년 출간한 <그린 비즈니스>라는 책에 가장 먼저 등장한 기업이 바로 큐셀이었기 때문인데요. 당시 큐셀은 태양광은 물론 글로벌 그린 비즈니스 업계 전체의 아이콘이었습니다. 그 책에서 한화는 ‘한국에서 태양광 사업에 뛰어들었거나 준비 중인 업체’ 가운데 하나로만 소개했습니다. 불과 3년 만에 세상이 바뀐 셈입니다.
한화는 큐셀 인수를 계기로 글로벌 태양광 시장에 우뚝 설 수 있을까요? 태양광 산업은 천연가스, 셰일가스 개발 붐을 뚫고 계속 성장할 수 있을까요? 그에 대한 답변을 찾기 위해 그 동안의 취재 경험을 한화 가족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The hey day
2008년 10월 13일 오전 10시. 북미지역 최대의 태양광 이벤트라는 ‘솔라 파워 인터내셔널’ 행사가 개막된 샌디에이고 컨벤션센터에 도착했습니다. 그동안 미디어를 통해서만 보던 글로벌 태양광 기업들이 전시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는데요. 우선 전시장 가운데 자리 잡은 큐셀의 부스부터 찾았습니다. 당시 세계 1위의 태양전지 생산업체였기 때문에 행사 참가자들의 관심이 매우 컸고, 부스는 관람객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큐셀 관계자들은 내가 “한국에서 온 기자”라고 소개하자 PR 책임자인 스테판 디트리히에게 안내했습니다. 디트리히는 큐셀이 글로벌 1위 업체로 오른 과정, 1위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 태양광 기술의 발전 방향, 시장 변화 전망, 각국 정부의 정책, 한국의 태양광 업체와 시장 전망 등에 대한 나의 질문에 꼼꼼하게 답변했습니다.
30분 정도의 인터뷰가 끝나자 디트리히는 “혹시 내일 저녁에 시간이 있느냐?”고 물으며 티켓 한 장을 내밀었습니다. ‘큐셀 파티, 저녁 8시부터 하우스 오브 블루스(House of Blues)’라고 써 있는 초대장이었죠. 하우스 오브 블루스. 브리트니 스피어스 등 세계적인 스타들이 공연한 샌디에이고의 대표적인 클럽이 큐셀을 위한 사교장으로 탈바꿈했습니다. 글로벌 태양광 기업의 경영자들, 캘리포니아 주 정부와 샌디에이고 시 관계자들, 엔지니어와 교수, 연구원과 언론인 등이 초대됐습니다. 샴페인, 치즈, 칵테일, 올리브, 뷔페, 재즈, 댄스, 그리고 소통. 역사는 늘 밤에 이뤄지는 것이죠.
큐셀 사람들은 파티에서 굳이 회사를 홍보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프라이빗 파티를 주최해서 유력인사들을 초대하는 것 자체가 회사의 위상을 과시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날 파티에 참석한 그 누구도 큐셀의 밝은 미래를 의심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이때가 큐셀의 최전성기였는지도 모르겠네요.
큐셀의 심장 속으로
2009년 1월 13일 오전. 독일 라이프치히의 중심가 호텔에서 택시를 타고 30분을 달려 비터펠트-볼펜에 도착했습니다. 구름이 낀 하늘 아래 너른 평야 지역이 펼쳐져 있었어요. 옛 동독의 퇴락한 산업단지였던 이 지역은 태양광 단지(Solar Valley)로 변모해가고 있었습니다. 출입사무소에서 방문 절차를 마친 뒤 2개의 검문소를 지나서 큐셀 본사에 도착했습니다. 샌디에이고에서 만났던 디트리히가 반갑게 맞아줬습니다. 디트리히는 사무실에서 서류 한 장을 내밀었는데요, 생산라인을 견학할 때 지켜야 할 10가지 사항을 담은 서약서였습니다.
"사진을 찍지 말 것, 기계나 물품을 만지지 말 것, 가이드 이외의 직원들과는 대화하지 말 것."
디트리히는 6개의 생산라인 가운데 제4생산라인으로 안내했습니다. 큐셀은 방문객에 따라 보안등급을 나눠 관람 시설에 제한을 뒀는데, 나에게는 가급적 많은 시설을 볼 수 있도록 낮은 보안등급을 적용했습니다. 큐셀의 생산라인은 내가 앞서 방문한 한국 태양광 업체들의 생산라인과 거의 비슷했습니다.
생산라인을 보고 난 뒤 큐셀이 자랑하는 ‘라이너 르모이네 연구센터’를 방문하고 싶었지만, 그곳은 출입불가 지역이었습니다. 250여 명의 과학자와 엔지니어가 실리콘 결정질 등 갖가지 원료를 사용한 태양전지를 시험 제작하고,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는 곳이었죠. 당시에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한 한국 여성도 이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었지만, 역시 면담은 불가능했네요.
흐린 날씨 때문인지, 아니면 행사장과 본사의 차이 때문인지 샌디에이고에서 목격한 큐셀의 활력이 막상 본사에서는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원래는 이날 본사에서 창업자이자 CEO인 안톤 밀너를 인터뷰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밀너가 갑자기 뉴욕으로 출장을 가게 돼 인터뷰는 추후에 이메일로 대신했습니다. 디트리히는 밀너가 왜 출장을 떠났는가에 대해서는 얘기해주지 않았지만, 나중에 뉴스를 검색해보니 투자 유치와 관련된 출장이었습니다. 글로벌 금융 및 경제 위기의 여파로 자금난이 왔던 것이죠.
버블에서 트렌드로
2007년 10월 12일 오후 2시, 워싱턴 DC 중심가의 BP솔라 본사. 백악관에서 네 블록 떨어진 사옥 10층의 펜트하우스에서 리 에드워즈 CEO를 만났습니다.
“BP는 British Petroleum이 아니라 Beyond Petroleum입니다.”
“BP는 석유회사가 아니라 에너지 회사입니다.”
에드워즈는 태양광 사업 등 BP의 신재생에너지 개발 사업을 설명하는 데 열을 올렸습니다. 에드워즈는 태양광 사업이 “장기적으로 이익이 많이 나는 굿 비즈니스”라며 “지난 몇 년간 대체에너지 쪽이 BP 내부에서도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더 많은 투자를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에드워즈가 이런 확신에 찬 발언을 한 지 1년도 지나지 않아 BP는 태양광 등 대체에너지 사업에서 발을 빼면서 다시 석유 사업에만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로열더치셸, 엑슨모빌, 셰브론 등 다른 석유 메이저 회사들도 마찬가지였고요.
2009년 3월 23일 오후 4시, 샌프란시스코 중심가의 CMEA 본사. CMEA는 당시 실리콘 밸리의 신생 클린 테크놀로지 기업에 투자하는 대표적인 그린 벤처 캐피털이었습니다. 이 회사의 포트폴리오에는 박막태양전지 제조업체인 솔린드라가 포함돼 있었어요. 투자 책임자인 제임스 김은 솔린드라에 대해 “저비용, 고효율 태양전지 모듈을 만드는데, 버락 오바마 정부도 경기부양 예산을 통해 가장 먼저 투자한 업체”라고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그로부터 2년여 뒤인 2011년 9월 1일 솔린드라는 파산을 신청했고, 오바마 대통령도 정치적으로 곤경에 빠졌습니다. 석유 메이저를 중심으로 한 에너지 업계에서는 2000년대 중반부터 붐을 일으킨 그린 비즈니스의 거품이 꺼져가는 현상 가운데 하나라고 지적했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그러면 태양광의 시대도 끝난 것일까요?'
미국 특허청(PTO)이 올해 1분기에 승인한 클린 테크놀로지 관련 특허는 모두 694건. 이 부문의 특허가 집계되기 시작한 2002년 이래 가장 많은 건수입니다. 글로벌 금융 및 경제 위기에도 불구하고 그린 비즈니스 관련 연구와 개발(R&D)은 계속 활성화되고 있다는 구체적인 증거죠.
특히 1분기에 승인된 특허를 분야별로 나눠보면, 태양광이 188건으로 연료전지(232건)에 이어 2위였습니다. 미국 내의 태양광 발전 시설은 지난 2분기에 전 분기보다 2배가 늘었고요, 전년에 비하면 무려 71%가 상승한 수치입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태양전지의 와트당 평균 가격은 2007년 7.2달러에서 지난해 1.28달러 선으로 급락했습니다. 반면, 미국 내 벤처캐피털의 투자 가운데 클린 테크가 차지하는 비율은 2001년 1.2%에서 지난해 23.1%로 늘었습니다. 가격은 내려가고 투자는 늘었습니다. 붐에서 버블을 거쳐 트렌드가 된 IT 산업처럼 그린 비즈니스도 트렌드화하면서 꽃을 피우기를 기다리는 것이죠.
한화는 다르다. 한화만의 차별화된 경쟁력
2012년 4월 14일 토요일 아침 6시 40분. 매주 해오는 것처럼, 이날도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 프로그램에서 주말 뉴스브리핑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뉴스로 한화그룹이 실리콘 밸리에 태양광 연구소인 ‘한화솔라아메리카’의 개소식을 갖고 본격 가동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전했는데요. 나는 “이 소식을 전하는 건, 우리나라 기업들이 대부분 태양광 사업에서 발을 빼려는 추세인데, 한화가 본격적으로 뛰어드는 것이 이채롭기 때문”이라고 설명을 했습니다. 그 동안의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태양광 사업의 성공 요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가장 중요한 것은 규모입니다. 생산 능력을 늘려야 합니다.
둘째, 품질(태양전지 효율)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셋째, 다른 회사 제품과 차별화 해야 됩니다.
넷째, 금융 능력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다섯째, 안정적인 고객을 확보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섯째, 고객 오리엔테이션을 통해 신뢰를 구축해야 합니다.
이런 성공 요건들 가운데 한화는 어떤 요건을 만족시키고 있을까요.
첫째, 한화는 연간 생산능력이 2.3GW에 이르는 세계 3위의 태양전지 생산업체가 됐습니다. 일단 규모 면에서는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말입니다.
둘째, 큐셀의 Q는 품질(Quality)이라는 뜻이었습니다. 큐셀은 자사가 생산한 모든 태양전지의 오른쪽 하단에 Q 마크를 찍을 정도로 품질 관리에 진력했습니다. 그런 큐셀을 인수했기 때문에 품질 향상을 위한 기술 개발에서도 나쁜 조건은 아닙니다.
셋째, 현재 한화의 태양전지가 다른 경쟁사와 비교해 차별화되어 있을까요? 아직 그런 소식은 듣지 못했습니다. 한화가 집중적으로 연구해야 할 부분입니다.
넷째, 한화는 글로벌 경쟁사들에 비해 규모가 크고 금융사를 계열사로 두고 있습니다. 이 점이 상대적으로 유리할 수도 있습니다.
다섯째, 한화가 일본의 마루베니 사에 앞으로 4년간 500만 MW 규모의 태양광 모듈을 수출하기로 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이웃 나라 일본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를 적극 개발하는 것은 한화로서는 반가운 소식입니다.
여섯째, 고객의 신뢰는 앞으로 한화가 중장기적으로 시장에서 달성해야 하는 중요한 목표 가운데 하나입니다.
눈부신 빛으로 세상을 뒤덮을 한화의 태양이 떠오른다
2012년 5월 17일 낮 12시 서울 플라자 호텔 중식당 ‘도원’의 4층 홀. 정오의 태양이 새로 지은 서울시 청사 유리벽에 반사돼 홀 안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습니다. 누군가 “눈이 부시니 블라인드를 쳐달라”고 요청했지만, 나는 그냥 두자고 했습니다. 한화 그룹은 햇빛과 친해져야 하기 때문이었죠.
한화는 원래부터 불(火)을 다뤄온 기업입니다. 그 동안 화약이라는 작은 불꽃을 다뤘다면 앞으로는 태양이라는 거대한 불덩어리를 다루게 됩니다. 위기가 될 수도 있고, 기회가 될 수도 있지만 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글 / 이도운 서울신문 논설위원, 전 워싱턴특파원 국제부장/정치부장
* 이 컨텐츠는 한화그룹 사보 한화한화인 '스페셜 칼럼' 내용을 재구성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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