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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사람들/한화인 이야기

기업사보의 산 역사. 한화사보 <한화·한화인> 500호 특집

 



회사의 소식을 널리 알리기 위한 사보. 밖으로는 사람들에게 회사의 소식을 전달하는 메신저이기도 하고, 안으로는 임직원 과 가족들의 넓게는 협력사까지. 그 마음을 전하는 따뜻한 장이 되기도 합니다. 한화그룹의 사보가 올해 1월 500호를 냈습니다! 500권의 좋은 사보를 만들기 위해 무려 42년 동안 꾸준히 노력해 온 한화그룹의 보람이자 결실이죠^^ 창간했던 1971년에는 지금의 사보와 어떻게 달랐을까요? 500호나 사보를 내면서 담겼던 이야기는 또 얼마나 많을까요? 한화그룹의 42년 사보 역사 지금부터 살펴봅니다!


 

▲한화 사보가 500호에 이르는 동안 만난 명사 중  왼쪽부터 산악인 엄홍길, 아마존의 눈물 김진만 PD, 발레리나 김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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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권 500호를 맞이한 한화그룹 사보의 창간호(1971년 1월 1일) 제호는 ‘다이나마이트 프레스’로 다소 강한 이미지였습니다. 당시 8면으로 구성된 신문 형태의 사보는 단색으로 인쇄되어 그룹 소식을 충실히 전달했죠. 1972년 9월, 제호를 ‘다이나마이트’로 변경하고, 1979년에는 4X6배판의 종합잡지형 사보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이후의 시간은 그룹 사보가 500호까지 이어져올 수 있었던 초석을 마련한 9년으로, 그 어느 때보다 의미있는 시기였죠.

 

잡지 형태로 판형이 바뀌면서, 더욱 많은 양의 정보를 담을 수 있게 됐습니다. 다양해진 정보와 함께, 1983년 3월 처음으로 일부 페이지(4페이지)를 컬러로 인쇄하기도 했습니다. 엽서를 도입하여 임직원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싣기 시작하면서 창간 후 9년 동안 정보 전달이 목적이었던 사보가 그룹 내 각 계열사와 임직원 간의 의사소통을 위한 장으로 착착 변모해 가는 시작이기도 했죠.


이후 콘텐츠가 점점 풍성해지면서 1989년에는화 사보가 100페이지까지 증면됐습니다. 1992년 10월, 그룹 창립 40주년을 기념해 다소 딱딱했던 사보의 제호를 ‘한화’로 변경했고 일부 페이지만 컬러로 인쇄됐던 것을 전면을 컬러로 인쇄하여 현재 사보와 비슷한 형태가 되었어요. IMF로 인한 경제 위기에 영향을 받아, 1994년 10월호를 기점으로 사보의 성격이 경제 상황과 경영 이념 등에 대한 정보 전달을 중심으로 한 개혁지로 크게 바뀌기도 했습니다.


 

사보의 제호가 <한화·한화인>으로 변경된 해는 1999년이었습니다. 이듬해, 사보의 판형도 5X7배판으로 다시 변경되면서 사보가 그룹 소식지로 확고히 자리잡습니다. 2000년에는 한국사보협회가 수여하는 사보 기획 대상, 이어 2002년에는 사보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죠! 더불어 창립 50주년을 맞이하여 1인 1사보 배포 체제가 시행되면서 전보다 많은 임직원과 그 가족들이 사보를 접하고 활발히 참여할 수 있게 됐습니다.

 

 

400호를 맞이한 이후에도, 참여형 콘텐츠들은 꾸준히 발전했습니다.  2011년부터는 새롭게 모바일 버전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앞으로도 한화그룹 사보는 다양한 통로로 소통을 시도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특히, 작년 2012년은 그룹 창립 60주년을 맞이하여, 기념 이벤트를 통한 축하와 격려로 한화의 지속적인 성장을 기원했습니다^^

 

 


 

한화 사보 속 다양한 삶과 열정의 기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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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한화인>의 제호가 ‘다이나마이트’였던 시절, 매월 빠져서는 안될 감초 같은 코너는 단연 만화 ‘다이나양 마이트군’이었습니다. 소소한 일상과 회사 생활을 재치있게 다룬 이 코너는 김성두씨의 단편 만화로 1992년까지 이어졌으며, 이후 시사만화가 오룡씨가 그린 만화 ‘다이나마이트’로 바뀌었습니다. 연재 만화만큼이나 사우들의 큰 인기를 얻었던 코너는 단연 ‘꽁트’입니다. 96호부터 실리기 시작해 1992년까지 무려 13년이나 지속된 장수코너로 내용이 이어지는 꽁트, 옴니버스 추리 꽁트 등 다양한 형태로 사보를 읽는 즐거움을 더했습니다.


사보는 그룹의 소식을 전달하는 메신저이기도 하지만, 또한 임직원및 가족들의 마음을 전하는 사랑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이전까지 그룹 소식을 전달하던 다소 딱딱한 형식의 사보에 1991년 ‘가족과 함께 읽는 페이지’ 코너가 생기면서 온 가족이 함께 읽을 수 있는 사보가 되었습니다. 직접 가족의 사진이나 사연을 보내기도 하고, 서로에게 쓴 편지를 싣기도 하며 사보를 통해 애정을 키워나갔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이후에도 가문의 영광(2003), 당신이 계신 풍경(2008) 등 가족의 사랑을 듬뿍 담은 코너들로 이어지게 되죠.

 

왼편에는 미스터 한화인, 오른편에는 미스 한화가 선한 미소를 짓고 있는 ‘미스 한화 미스터 한화인’ 코너. 매월 우수 사원을 선정해 인터뷰하여 그들의 사진과 함께 내용을 전하는 코너로 당사자들의 사기를 북돋웠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우들에게 귀감이 되기도 했습니다다. 실제로 우수 사원으로 선정된 사우들에게는 영광의 기록이자 더욱 업무에 매진하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겠죠? 최근에도 릴레이 인물 열전(2011)과 같은 코너로 사우들의 열정을 기록하기 위해 발로 뛰며 사보를 꾸려나가고 있습니다.


2004년 신설되어 현재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는 장수 코너 ‘아빠가 쏜다’. 그룹의 임직원이 자녀의 학교를 방문해 아이들이 좋아하는 피자를 전해주는 현장을 담고, 더불어 마음이 담긴 편지로 감동을 전하는 코너입니다. 이 코너는 타사 사보에도 큰 영향을 끼쳐 이후 비슷한 형태의 아이템들이 다양하게 나타나기도 했답니다^^


2009년에 기획된 ‘고맙습니다’는 직원, 협력업체, 외부 독자들에게 모두 좋은 반응을 얻으며 현재의 ‘生生상생’으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협력업체와 상생하며 신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나는 그룹의 상생협력 이미지를 잘 표현했을 뿐만 아니라 서로의 진심이 담긴 따뜻하고 열정적인 모습이 많은 이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요!




 

  

이원복 교수부터 김덕수 사물놀이 명인까지, 한화가 만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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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후반부터 임직원과 가족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코너들이 등장했습니다. 1979년 첫 선을 보인 인터뷰 코너의 주인공은 당시 케마노벨그룹의 방계회사 니트로 컨설트 임직원들! 이들은 한화에 대해 “본국에서 듣던 한국화약이 30년도 안 되어 이렇게 큰 그룹으로 성장한 데에 놀랐다”라며 “그런데 자신의 중요성에 대해 너무 겸손해 하고 그 없이는 안 되는데도 확신감이나 자랑감을 갖지 않고 있어 좀 이상했다”며 한국의 문화에 의아함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1979년 12월/104호)


1981년 연재된 ‘사내외토론’은 참신한 구성으로 눈길을 끌었습니다. 1981년 1월(117호) 문화방송 차인태 아나운서는 한 고등학생의 하소연을 소개하며 “장학퀴즈에서 문제가 출제될 때마다 대답이 늦거나 모를 때는 아버지의 꿀밤이 사정없이 날아온다” 는 에피소드를 전해 웃음을 선사하기도 했어요. 허구연 프로야구 해설위원은 1983년 10월(149호) “프로야구가 사시장춘 호황을 누릴 것이라는 보장은 없을지 몰라도 기업 홍보와 프로 스포츠는 이제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고 의견을 밝혔는데요. 프로야구 관중 700만 시대에 만나니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글귀네요. 1985년 ‘10분 인터뷰’라는 코너가 등장, 가수 김학래, 개그맨 김병조 등이 한화인들을 만났습니다.


1990년부터는 ‘사람들’이, 1991년부터는 ‘나도 화약인’이 사내외 이슈가 되는 인물을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빙그레이글스’의 선수나 팬, ‘현암신장연구소’ 소장, 그룹 달력 작가, 그룹 홍보대사 등 한화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이들을 만나기도 했지만, 발명가, 거리 색소폰 연주가 등 이색적인 인물을 소개하는 코너이기도 했습니다. 이 중 당시 계열사였던 빙그레의 상품인 ‘투게더’의 광고 모델로도 잘 알려져 있던 탤런트 노주현 씨가 갤러리아 내 커피숍을 개점해 한화와의 각별한 인연을 자랑하기도 했습니다. 재밌는 인연이죠?


새천년을 맞은 사보는 ‘세상 사는 이야기’라는 컬럼을 통해 시대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인사들의 열정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아마존의 눈물 김진만 PD, 발레리나 김주원, 소설가 오정희, 사진작가 홍순태, 요리연구가 한복선, 방송인 서유석 등 익숙한 이름들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코너의 첫 번째 문을 연 국악인 신영희(2000년 1월/344호) 씨는 글을 통해 “나는 소수에 의해 내 예술까지 의심받는 유명세를 치러야 했다”며 “그러나 오히려 다소 무모했던 시도가 국악 대중화에 도화선이 될 수 있었음에 안도한다”고 지난 날을 회상했죠.

 

2009년부터 지금까지 연재되고 있는 ‘희망인터뷰’가 만난 이들은 모두 48명. 소설가 이외수 씨를 시작으로 산악인 엄홍길 대장, 국악인 김덕수, 이어령 초대 문화부장관, 박찬호 선수 등 우리 시대의 걸출한 인물들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엄홍길 대장은 2009년 2월(453호) “고난은 위대해지기 위해 얻은 기회”라고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고, 이어령 교수는 한화인들에게 “화약이 지닌 폭발성처럼 잠재력과 창조력을 폭발시킬 수 있는 한화인이 되길 바란다”(2010년 1월/464호)고 덕담을 남겼습니다. 2011년 10월(485호)에 만난 조훈현 기사는 “치열하게, 지금 내가 두고 있는 한 판에 몰두하듯 내가 사는 하루하루에 모든 것을 쏟아 부으시기를”이라고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42년, 500호로 이어지는 한화 사보의 역사 살펴보니 어떠세요? 재미있는 기획이 참 많았죠? 신기한 명사들도 많이 만났고요. 단색에서 총천연 칼라로, 8명에서 100페이지로. 점차 양적, 질적으로 발전해가는 한화 사보의 모습을 압축적으로 살펴보니 참 뿌듯합니다^^ 2013년에도 한화의 사보는 쉬지 않습니다. 지켜봐주세요!

 

    500호를 맞은 <한화·한화인>에게 뜨거운 응원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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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료로 여러분의 집으로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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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컨텐츠는 한화그룹 사보 한화한화인 '열정이 만들어 낸 500호의 기록, 500호의 역사' 내용을 재구성 했습니다.

*이 컨텐츠의 모든 저작권은 한화그룹 공식 블로그 한화데이즈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