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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라이프/문화/취미

배우 김갑수가 세실극장에서 결혼식을 올렸던 사연은?

1986년 11월 22일 한화손보 세실극장에는 배우 김갑수 씨와 그의 동갑내기 동료인 배우 현금숙 씨가 무대 위에 올랐습니다. 연극의 배경음악이 흐르고 웨딩드레스와 양복을 갖춰 입은 남녀가 주례 선생님 앞에 엄숙하게 서 있습니다. 신랑이 가짜 결혼 반지를 꺼내 신부의 손가락에 끼워줍니다. 신부도 반지를 꺼내 신랑의 손가락에 끼워줍니다. 관객석에서 박수가 쏟아져 나옵니다.

영락없는 결혼식 장면인데요. 하지만 이 무대는 연극이 아닙니다. 연극에 인생을 걸었던, 그래서 무대 위에서 결혼을 꿈꾼 배우 김갑수 씨의 결혼식이었습니다. 인생만큼 진한 연극무대가 펼쳐진 이곳은, 많은 연기파 배우들의 혼신의 땀이 스며 있는 곳, 바로 한화손보 세실극장입니다. 

대한민국 연극 1번지는 대학로 아닌 한화손보 세실극장?!
연극하면 떠오르는 곳이 어딜까요?
많은 분들이 '대학로'라고 답할 것 같은데요. 대한민국에서 연극이 태동한 곳은 '대학로'가 아니랍니다. 
세실극장은 서초동 예술의전당과 혜화동 문예회관이 생기기 전까지 1977년 9월 제1회 대한민국 연극제부터 총 5회 연극제를 치뤄낸, 무대 예술과 창작극의 불씨가 타오르는 터였답니다.  IMF가 오고 문화계가 휘청거릴 때 많은 연극인들의 땀과 눈물로 지켜낸 세실극장을 지키고 있는 하상길 극장장님을 만났습니다. 

1976년 개관한 세실극장, 어떤 곳인가요?

지금에야 '연극'하면 대학로를 떠올리지만, 70~80년대의 연극의 메카는 바로 이곳 정동의 세실극장이였죠. 대학로가 20~30대 연극층이 두텁다면, 이 곳은 30~40대의 연극을 사랑하는 중년들의 극장가라고 할 수 있죠. 대한민국 연극제를 1회부터 5회까지 치뤄낸 만큼 연극인들에게 이 공간은 각별해요.
또, 세실극장은 당시 김수근 선생과 건축계의 양대 산맥이라 불리던 김중업 선생이 1976년에 지은 건물로, 건축잡지 '공간'이 꼽은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20선에 들기도 했어요. 극장 뒷 편에는 성공회대성당이 있는데 증축하기 전이니까 그 때는 성장이 더 작았거든요. 지금의 40~50대의 청춘 시절에는 손꼽히는 데이트 장소였지요. 누구나 이곳에 아련한 추억이 한 가지쯤 있을 거에요.  

            한화손보 세실극장 뒷마당의 성공회 대성당의 모습, 많은 청춘들의 데이트 장소였다고 해요.   

그럼 세실극장을 인수하시게 된 때는 언제인가요?

지금에야 소극장이 많지만, 당시 '극장'을 가진다는 건 연극인들의 평생의 소원이었어요.
대학로로 극장들이 옮겨가면서 이 거리가 많이 침체됐어요. 그러면서 성공회의 사무실로 쓰이기도 했고∙∙∙. 연극계를 떠났다 ‘99년에 다시 돌아왔을 때, 극장이 몰라보게 변해 있었죠. 마치 상주나 점촌 어디쯤 있는 쓰러져 가는 영화관 같더라구요. 그 땐 성공회에서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었어요. 연극계의 유서깊은 공간임에도 맡는 사람이 없어 사라진다는 말에 덮어놓고 계약을 했죠.

계약을 하고 세실극장의 재기를 꿈꿨죠. 연극하기에 바람직한 극장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무대를 180cm를 더 앞으로 내고 무대를 낮췄어요. 또 좌석을 300석에서 200석으로 줄였죠. 다들 말렸어요. 좌석이 많아야 대관료를 많이 받으니까∙∙∙. 지금 우리 극장장이 그 때문에 애를 먹고 있어요.

한화손보 세실극장이 된 것이 그 즈음인가요?
외국에서는 '네이밍 스폰서'라는 제도가 보편화 되어있어요. 그래서 우리나라의 유수의 기업들에게 제안서를 보냈는데, 4곳에서 안된다는 답신이 오고, 나머지는 답신조차 없었어요. 절망스러웠지요. 그런데, 한화손해보험에서 고맙게도 연락이 왔고, '한화손보 세실극장'이 만들어지게 된거죠.  

연극 뿐 아니라 모든 예술활동이 마약처럼 중독성이 있어요. 제주에는 ‘두모아’라는 사진관이 있어요. ‘82년부터 ‘99년까지 제주에서 사진만 찍다가 루게릭 병으로 죽은 사진작가 김영갑을 기리는 곳입니다. 예술은 그런 몰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일반적인 생활을 갖추고 살면서 예술가의 삶을 살 순 없죠.

배우 김갑수 씨도 이곳에서 결혼을 했답니다.
극장장님의 연극인생이 궁금합니다.
실은 연극을 늦게 시작했어요. 전 건국대 행정학과를 나왔는데 어느 날 캠퍼스가 지루하단 생각이 들어, 서클 한번 들어볼까 생각을 했죠. 아주 가벼운 마음이었어요. 다른 서클은 마감이 되고, 공교롭게 연극부만 남아서 오디션을 봤죠. 경쟁률이 높아서 안 될 줄 알았는데, 떡 붙었어요. 그게 시작이었죠.
처음엔 ‘재능이 없다’고 선생님께 혼났습니다. 이를 악물고 연습을 해서 이듬해 총평회 때, 그 선생님께 ‘상길이가 가장 열연했다’고 칭찬을 들었어요. 그 후부터는 주인공도 하고 당시 엘리트 극단으로 불리던 실험극단 단원으로 있기도 했는데, 개인적인 사정으로 그 후 10년 과일 농사를 지으며 살았습니다. 근데, 참 과수원 가지치기를 하면서도 '가지를 치는 것이 연출이다, 나무가 자라날 바를 알고 미리 큰 그림을 그리는 일이 연출이구나’하면서 내내 연출 생각을 했어요. 연극이 업이었나봐.

한화손보 세실극장을 거쳐간 작품과 배우 중 기억에 남는 분은 누구인가요?
세실극장은 연극인들에게는 각별한 장소에요. 한 때는 연극인들에게 이 극장은 '꿈의 극장'이었어요. 연극인들이 서고 싶어하는 무대가 있어요. 연극배우 김갑수 씨가 여기서 데뷔해서 결혼식도 이 곳에서 했어요. 많은 연극인들이 이 극장에서 결혼하는 것을 영예로 여겼었지요.

애착이 가는 작품이라,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다는데∙∙∙. 흥행이 잘 된 작품이랄까요? 허허. 당대의 최고의 배우들이 이 무대를 거쳐갔죠. 김혜자의 모노드라마 ‘셜리 발렌타인’, 고두심의 ‘나 여자예요’, 하희라 ‘애인을 꿈꾸며’ 등 연출가와 배우로 몇 개월 동안 무대에서 함께 고생을 했으니, 내게는 다~ 소중한 기억이지요.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 '임의 침묵'의 김갑수, '나 여자예요'의 고두심과 '셜리 발렌타인'의 김혜자, 
          꽃마차는 달려간다 배우들의 모습, 아래 사진은 현재 공연 중인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 
 

세실극장, 따뜻함을 간직한 인생을 무대에 올릴 것
앞으로 어떤 공연을 무대에 올리실 건가요?
우리 극장이 참 많은 공연을 했는데, 고정 레파토리가 없어요. 스타들이 하고나면 작품이 좋아도 다시 공연을 서기가 힘들거든요. 고정 레파토리를 정하려고 고심하고 있습니다.
따뜻한 연극, 여운이 있는 연극을 하고 싶어요. 어느 중년부부가 연극을 봤는데, 연극을 보고 집에 가는 길에 남편이 그저 손을 꼭 잡더래요. 그렇게 손 잡은 채 말없이 집에 갔다라는 말을 하더라구요. 저는 따뜻하고 여유 있는 무대를 만들고 싶어요. 

한화손보 세실극장은 '장르'를 요구하지 않아요. 다만 내 기준은 '내 아내와 내 자녀'들이예요. 그네들은 제가 생각할 때 사회에서 가장 보통 사람들이거든요. 그들이 부끄럽거나 쑥스럽지 않도록떳떳해야 한다는 것이 세실극장에 올리는 작품의 마지노선이예요. 그리고 세실극장을 후원하고 있는 한화손보나 우리를 도와주는 분들이 봤을 때 당당할 수 있는 그런 연극을 올려왔고, 또 올릴 겁니다.

>>한화손보 세실극장에서 하고 있는 공연이 궁금하시다면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바로가기◀

한화손보과 세실극장

한화손보는 지난 1999년부터 세실극장과 네이밍 스폰서십을 체결하고 매년 극장 임대료를 지원하고 있는데요. 공동 기획을 통해 한화손보 고객맞춤 문화 서비스를 제공하고 신입사원 교육 등 다양한 사내문화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또한 공연의 수익금을 푸드뱅크 사업에 내놓는 등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죠.

한화손보와 세실극장은 단순한 문화행사 아닌 문화 공연장인 소극장 운영을 지원했다는 점에서 ‘기업 메세나의 새로운 시도’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기업에 일방적인 도움을 받는 일반 사례가 아닌 문화계와 기업의 대표적 윈윈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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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 | 한화손해보험 홍보팀
사회공헌, 사내커뮤니케이션, 문화사업을 담당하며
회사생활을 누구보다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해맑은 미소를 짓고 살자는 신조로
오늘하루도 바보같은 웃음을 지으며 생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