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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 대세론에 빠진 것

3D 대세론에 빠진 것
요즘 휴대폰 업계의 빅이슈가 스마트폰이라면, 영상 분야의 최대 화두는 단연 3D다. 말할 것도 없이, 지난해 말 폭풍처럼 등장해 전세계인들의 시선을 사로 잡았던 ‘<아바타> 효과’ 때문이다. 3D가 정체에 빠진 극장업계를 살려낼 구원 투수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 극장들은 앞다퉈 3D 상영관을 늘리기 시작했다. 발 빠르게 Full HD 3D TV를 출시한 가전업계도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영상 혁명에 동참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이들 업체들로선 당장 남아공 월드컵을 3D TV의 위력을 과시할 절호의 기회로 삼을 태세다.

정부와 관계 기관도 발을 맞추고 있다. 한국도 뒤쳐질 수 없다며 3D 활성화를 위한 여러 정책적 방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애니메이션의 경우, 3D가 아니면 정부 지원은 꿈도 꾸지 말라는 애기가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 기술적으로 준비가 덜 돼 있지만 일부 한국영화들도 3D 제작을 검토하거나 추진 중이다.

사실 최근의 3D 열풍은 지나친 호들갑에 가까워 보인다. 이유는 간단하다. ‘콘텐츠가 핵심’이라고 외치지만 정작 플랫폼 사업자들만 돈을 버는 대한민국의 희한한 상황과 마찬가지로, 3D 분야 역시 소프트웨어는 턱없이 부족한데, 하드웨어만 난리 법석을 치고 있는 꼴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한국의 영상업계에서 3D는, 조금 냉소적으로 말해 ‘손님 끌기’용이 아니라 ‘주목 받기’용으로 활용되고 있는 분위기다. 일단 3D를 하겠다고 나서면, 주목을 받고 그 관심을 바탕으로 투자를 받거나 정부 지원을 받는 게 좀더 수월해질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이다.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은, 우리는 아직 그 어떤 국산 3D 콘텐츠를 확인하지 못하고 있으며 당장의 전망도 썩 밝지는 않다는 점이다. 3D 인프라 면에서 이제 막 걸음마 단계이기 때문이다.

3D 대세론에 빠진 것
이러다 보니 극장들 입장에선 막상 비싼 돈 들여 3D 상영관을 만들어는 놓았지만 틀 영화가 할리우드 영화 빼고는 그리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나마 할리우드 영화의 경우에도 얼마 전 개봉한 <타이탄>처럼, 2D 소스를 컨버팅해 억지로 3D로 포장해 놓고 손님을 끄는 웃지 못할 상황도 연출된다. 그 덕에 흥행 면에선 쏠쏠한 재미를 보긴 했지만 <타이탄>은 촬영 때부터 3D 카메라로 제작되지 않은 영화를 3D로 옮겨 보았자, 그 입체감이 그다지 크지 않다는 것을 입증해 보인 역설적인 사례가 됐다. 영화 그 자체의 만듦새는 나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본 적지 않은 관객들이 ‘속았다’며 혹평 세례를 퍼부은 것도 무리는 아니다. 

사실 지금의 3D 열풍에는 아주 중요한 화두 하나가 빠져 있다.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만 치중하다 보니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라는 문제는 소홀해지고 있다는 얘기다. 애석하게도, 최근 한국의 극장가와 영상업계를 휩쓸고 있는 3D 열풍에는 이 고민이 들어설 자리가 커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하드웨어가 앞서 나가면 콘텐츠는 자연히 따라올 것이라는 환상에 빠져 있는 것 같다.

연평해전을 다룬 전쟁영화 <아름다운 우리>(가제)를 3D로 제작할 계획인 곽경택 감독은, 지난 3월에 열린 ‘3D 월드 포럼’에 기조 연설자로 나서 ”지금은 기술보다 예술적 고민에 치우칠 시간”이라고 말했다. <아바타>로 3D 전도사가 돼 버린 제임스 카메론 감독도 지난 달 한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3D가 미래 영상산업의 대세가 될 것”라면서도 “문제는 콘텐츠”라는 전제를 잊지 않았다. 말하자면, 기술적 혁신만큼 3D에 걸맞는 영상 화법을 개발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는 얘기다.

얼마 전에 만난 이창동 감독에게서도 3D로 내처 달려가고 있는 상황을 바라보는 영화 창작자의 고민을 읽을 수 있었다.
“3D에 걸맞는 입체감을 최대화하려면 이를 테면 <아바타>처럼 하늘을 날거나 하는 장면이 들어가줘야 해요. 하지만 모든 영화에 그런 장면을 넣을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3D 대세론에 빠진 것
사실이 그렇다. 일찌감치 3D 기술의 성과를 쌓아온 할리우드 애니메이션만 보더라도 태반의 경우 공중 장면이 등장한다. 얼마 전 국내 개봉해 흥행에서도 성공한 <드래곤 길들이기> 같은 작품이 대표적이다. 이 작품 역시 <아바타>처럼 주인공 히컵이 투슬리스를 타고 하늘을 나는 장면에서 3D 특유의 입체감을 과시하고 있다. 다른 시도도 물론 있지만 이처럼 3D는 아직까지 CG를 대거 동원한 모험 스펙터클의 범주 안에 머물고 있다. 물론 부분적으로 3D를 도입한 호러 영화 <블러디 발렌타인>같은 예외가 있긴 하지만, 3D가 볼거리의 영역뿐 아니라 영화 장르의 폭까지 좁힐 수 있다는 우려가 괜한 소리로 들리지 않는 것이다.

이런 마당에 지난 16일 개봉한 영국 영화 <스트리트 댄스>는 그냥 지나쳐 버리기 어려운 시사점을 안겨준다. 세계 최초 3D 댄싱영화를 표방한 이 작품은, 스트리트 댄스 챔피언십 경기를 앞둔 힙합 댄싱팀이 발레 댄서들과 호흡을 맞춘다는 내용이다. 줄거리는 매우 간단하지만, 댄스 영화답게 현란한 춤 장면을 대거 포진시키고 있는데, 3D의 영역을 군무 장면의 역동성으로까지 확장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한 성취를 과시하고 있다. 특히 댄서가 그룹의 앞에서 뒤로 튀어 나올 때의 입체적 움직임은 음악의 리듬과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확실히 다른 차원의 쾌감을 선사한다.

스트리트 댄스
"스트리트 댄스"가 기특한 것은, 3D로 무엇을 보여줄 것이라는 고민의 성과를 드러낸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굳이 대규모 모험 스펙터클에 안주하지 않더라도, 소박하지만 새로운 차원의 3D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해 보이고 있다.

누군가는 3D 시대의 영화 화법이 ‘스토리텔링’이 아니라 ‘비주얼텔링’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 해도 어쨌든 영화의 서사적 기능, 즉 ‘말한다’는 본질에는 변함이 없다. 게다가 사람들은 점점 더 입체감이라는 시각적 자극에 익숙해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3D라는 형식보다 그 안에서 ‘기존의 것과 다른 무엇을 담아낼 것인가’라는 화두가 남게 될 것이다.  쫓아가기 급급해 보이는 지금의 3D 대세론에, 이런 화두도 얹혀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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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희 | 영화 저널리스트

자칭 "까칠쌉싸름한 인디펜던트 영화 저널리스트". 영화전문지 'FILM2.0' 기자로 일했으며 YTN과 부산 MBC 등에서 영화 코너 진행. 영문 격월간지 'Korean Cinema Today' 편집장. 최근에는 애니메이션 제작에 매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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