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알처럼 100미터를 질주하는 월드 챔피언 우사인 볼트나 초등학교 운동회 달리기 시합에 출전하는 아이 모두 출발 전 행하는 동작이 있습니다. 바로 큰 걸음을 내딛기 전 숨을 고르고 마음을 다잡으며 몸을 웅크리는거죠. 곧게 펴진 활에서 화살이 날아가는 것을 보셨나요? 화살은 활이 얼마나 휘어졌는가에 따라 더 멀리, 더 힘차게 날아가는 법입니다. 즉 도약을 위해서는 몸을 한껏 웅크려야 한다~ 이런 의미가 아닐까 합니다.
1966년의 벤투라 매장 직원들 / Photographer. Tom Frost
그럼 스프링처럼 웅크리기만 하면 잘 뛸 수 있을까요? 당연히 뛰는 방향 역시 명확해야 합니다. 목표 없는 질주는 우리는 도약이 아니라 오발이라 말합니다. 진정한 도약의 사례를 보여준 글로벌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의 사례를 통해 도약의 가치와 방법론에 대해 이야기 나눠 보고자 해요.
환경을 생각하여 유기농 면화만 취급하고, 단순히 아웃도어 용품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직원들이 진정 아웃도어를 즐기도록 권장하는 세계 최고의 아웃도어 의류 기업 파타고니아. 하지만 오늘날의 막강한 브랜드 파워에도 불구하고 파타고니아 역시 잠시 숨을 고르고 몸을 웅크린 시기가 있었습니다. 급격한 성장세가 주춤하며 위기론이 불거지던 바로 그 시점이었죠.
1972년, 처음 사업을 시작하였을 당시 파타고니아의 설립자, 이본 취나드(Chouinard, Yvon 1938~ )에게 특별한 목표나 거창한 포부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단지, 암벽 등반을 좋아하다 보니 시중에서 판매되는 제품의 문제점과 아쉬움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고, 이를 개선하고자 철공소를 운영한 것이 어느덧 연 매출 3억 달러 규모의 회사로 발전하게 된 거죠. 초기 이본 취나드를 비롯한 직원들은 자신들이 쓸 물건을 만든다는 생각에 진심과 신념을 담아 등산 장비를 생산했는데요. 그러다 보니 혼과 열정이 깃든 고품질의 제품은 입소문을 타고 고객들을 불러 모았으며, 1980년대 후반에는 손대는 품목마다 대박을 터트리기에 이르렀습니다. 누구도 파타고니아의 성장이 멈추거나 삐걱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작은 야외 대장간으로 이루어진 버뱅크의 매장에 있는 이본 취나드 / Photographer. Patagonia
그런데 이런 성장을 계속해 이어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매년 평균 40%의 성장세에 감춰졌을 뿐, 파타고니아 역시 해결하기 어려운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고 있었던 것이죠. 업무 조직도는 사흘이 멀다 하고 바뀌었으며 5년 동안 구조조정도 다섯 번이나 이루어졌습니다. 그래도 명료한 답을 찾을 수 없자 이들은 IBM과 할리 데이비슨에 관여한 바 있는 컨설턴트, 마이클 캐미 박사를 찾아갑니다.
"도대체 파타고니아의 사업 목적이 뭐요?"
마이클 캐미 박사는 자신을 찾아온 파타고니아의 경영진에게 대뜸 물었습니다. 그 질문에 대해 CEO 이본 취나드는 그 다운(?) 대답을 던지는데요.
“어쩌다 보니 사업이 커졌어요. 사실 돈을 충분히 벌었다 싶으면 남태평양에 가서 서핑이나 실컷 하고 싶어요. 그런데 다만, 사업을 그만두지 못하는 건 제가 미래에 대해 비관적이거든요. 그걸 좀 어떻게 해보려면 밑천이 있어야 할 것 같아서죠.”
답변을 들은 마이클 캐미 박사가 짧지만 분명한 어조로 조언합니다.
“그럴 거라면 회사를 팔고 환경기금을 조성하면 될 거 아니요.”
그러면서 사업 목적은 그렇게 얘기하는 게 아니라고 따끔하게 야단을 했죠. 이후 이 만남은 이본 취나드에게 “나는, 그리고 우리 기업은 왜 비즈니스를 하는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을 던져준 의미 있는 사건이 됩니다.
이본 취나드가 처음 사업을 시작한 대장간. 파타고니아 본사 위치 / Photographer. Tim Davis
이후로도 몇 년간 이본 취나드는 사업 목적을 명료하게 정의 내리지 못한 채 시간을 흘려보내고 맙니다. 결국 피할 수 없는 결정의 순간을 맞이하게 하죠. 1991년, 국가 경제가 불황 국면에 접어들고 성장세가 주춤하자 파타고니아에도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그 전까지 파타고니아는 가족 같은 분위기를 중시하는 회사였기에 한 번도 직원을 해고한 적이 없었지만, 해고만이 위기를 넘길 유일한 해결책이었죠. 결국 이본 취나드는 직원의 20%인 120명을 해고한 뒤, “우리는 왜 비즈니스를 하는가”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위해 경영진 십여 명과 함께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로 떠납니다. 가파른 성장에 취해 잊고 있었던 진정한 기업 경영의 목표를 찾고 재도약을 이루기 위한 여행이었죠.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에서 장시간의 논의를 통해 기업의 목표와 방향을 확립한 경영진은 심기일전, 새로운 마음으로 업무 일선에 복귀합니다. 그리고 영업 전략과 자금 부족 해소를 위해 뛰는 한편, 직원들과 함께 새로 정립한 경영 철학과 가치관, 비즈니스의 목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는데요. 이본 취나드는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회사 근처 공원에서 야영을 하며 그동안 어렵게 체득한 교훈들, 즉 한 인간으로서, 등반가로서, 서퍼로서, 또 플라이 낚시꾼으로 경험한 교훈들을 회사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심어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제품을 디자인하는 모습. / Photographer. Tim Davis
그는 회사가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의 범위를 벗어나 단번에 무언가를 이루고자 욕심을 부린다면 결국은 위기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리고 지속적인 성장과 도약을 위해서는 기업이 처한 상황과 시장 환경을 진지하게 살펴봐야 한다는 것을 깨우친 거죠. 물론 회사 구성원이 모두 한마음으로 올바른 방향으로 뱃머리를 틀고, 조직문화를 공유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요구됐습니다. 그러나 경험에 바탕을 둔 철저한 성찰과 자기 반성이 가져다준 뚜렷한 비전, 명확한 목표의식은 빠르게 확산되었습니다.
당연히 주춤했던 성장세 역시 반등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다 거둔 성공이고, 돈을 벌면 서핑이나 하러 가겠다”는 이본 취나드. 그가 책임의식을 지닌 진정한 경영자로 기업의 회생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거죠. 1992년, <잉크(Inc)>지는 파타고니아가 과연 1990년대를 버틸 수 있을지에 관해 부정적인 기사를 내보낸 적이 있었는데 이후 그와 관련해서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통쾌한 반전이지요.
오늘날 글로벌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는 CEO 이본 취나드와 임직원의 바람대로 업계 종사자들에게 지속 가능한 성장 모델은 물론, 훌륭한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규모를 떠나 그들의 비즈니스 스타일이 존중할 만하고 배울 가치가 있다는 것을 증명해낸 거죠. 더 크고 높은 곳을 향해 도약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휴식과 자기 점검, 그리고 목표를 향한 강력한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더군다나 홀로 뛰는 마라톤이 아니라 함께 호흡하고 나아가야 하는 기업 경영의 경우 하나의 문화와 철학을 공유하는 공동체 의식이 절대적입니다.
파타고니아는 아픈 곳을 찌르는 직설적인 조언을 무시하지 않고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았습니다. 회사가 휘청거릴 뻔한 위기를 팀워크를 다지는 기회로 삼았고 CEO가 직접 직원 한 명 한 명과 대화하며 공감대를 넓혔어요. 비 온 뒤 굳은 탄탄한 대지를 발판 삼아 눈부신 도약에 성공한 파타고니아. 귀를 열고 마음을 열 것. 진정으로 대화하고 공감대를 넓힐 것. 기업문화가 뿌리내릴 때까지 설득하고 또 설득할 것. 도약의 행동강령은 명확합니다. 다만 누가 먼저 실천하는가에 따라 눈부신 도약의 주인공은 결정될 겁니다.
글 / 정민호 연구원 / 최동석 인사조직연구소
* 이 컨텐츠는 한화사보 '한화·한화인' 월드컴퍼니 를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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