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직장인 라이프/문화/취미

연애가 끝난 후 읽는 책


<사랑의 코드>, 푸른숲, 크리슈티안 슐트


사랑의 코드
돌아보면 대체로 문제는 우리가 이성적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오늘은 전화하지 말 것, 전화하더라도 조르거나 투정부리지 말 것, 그렇게 못 하겠다면… 절대 왜 그랬냐고 따지진 말 것. 그러나 다짐은 늘 허물어졌다.

알지만, 안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처음 <사랑의 기술>을 읽었을 때의 충격을 지금도 기억한다. 대학교 1학년이었고, 계절은 봄이었고, 인문대에서 가장 예쁜 여자 아이를 좋아하고 있었다. 나도 그에 못지 않은 미남이었지만 ‘기술’은 필요했다. 교양 강좌 과제 중 하나가 교수님이 선정한 여러 책 중 하나를 읽고 레포트를 쓰는 거였는데, 목록을 보고 망설임 없이 <사랑의 기술>을 하겠다고 적어 냈다. 에리히 프롬이 연예심리학 박사라도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아무리 읽어도 ‘기술’은 안 나왔다는 얘기나, 충격의 정체가 사실은 당황스러움이었다고 이제 와서 말하는 건 우습겠지? 올해 5월 번역 출간된 <사랑의 코드>도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다. 연예에 도움 될만한 전략적 코드? 그런 건 없다. 책은 사랑에 대해 말하지만 사랑의 감정이 거세돼 있다. 설렘도 흥분도 괴로움도 갈증도 없다. 그러나 예전에 당신과 내가 했던 사랑의 원활한 진행을 막았던 건 그런 ‘감정’들 아니었나? 한 번쯤은 사람의 관계, 사랑의 속성 등에 대해 이성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막연하게 저 남자 혹은 저 여자랑 섹스 하고 싶다고 느꼈었겠지만, 그건 여러 가지 논리적 사유가 종합적으로 영향을 미친 결과라고 이 책은 말한다. 물론 그 과정의 세부까지도. 모든 논리를 신봉할 필요는 없다. 무턱대고 다가서는 게 어리석은 일이란 사실을 알면 된다. 이 인문학적 보고서는 결국 우리의 나약한 의지를 재판관 앞에 데려다 놓을 것이다. 주의사항, 다시 사랑에 빠지기 전에 읽을 것! 감정이 불타오르기 시작하면 이성은 우주로 날아가 버릴 테니까.
P.S. 다행스럽게도 이 책은 <사랑의 기술>보다 읽기 쉽다.
_ 이우성, 29세, DAZED&CONFUSED 피처에디터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민음사, 조너선 사프란 포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이별한 사람에게는 무엇이 필요할까?
상처에 뿌릴 소금, 그에게 꽂을 비수, 쓰레기통에서라도 건져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커다랗고 진한 초콜릿 케이크, 엔도르핀 덕에 진통제 역할을 해 줄 포르노, 전화를 결코 먼저 끊는 법이 없는 친구, 그의 단점 목록, (혹은) 그의 장점 목록, 나를 숭배하는 사람, 이전까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어 무엇도 의미할 수 없는 노래, 내 것보다 더 끔찍한 다른 재난 소식, 아무도 대답할 수 없을 어려운 질문, 누구나 대답할 수 있는 쉬운 질문, 발신번호가 찍히지 않은 전화, 그리고… 이 책.

아홉 살 소년 오스카는 9.11 테러로 사랑하는 아빠를 잃는다. 아빠가 자신을 위해 비밀을, 그리고 그 비밀을 풀 단서를 숨겨 두었다고 믿는다. 그래서 아빠의 파란 꽃병 안에 들어있던 열쇠가 열 수 있는 자물쇠를 찾아서, 함께 들어있던 메모 속 ‘블랙’이라는 단 한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 위해 뉴욕의 Mr. 혹은 Miss나 Mrs. 블랙을 죄다 만나러 다닌다. 오스카의 할아버지는 2차 대전 때 고향에 폭격을 당해 사랑하는 소녀를 잃는다. 그녀 안에 있던 자신의 아이도 잃는다. 자신도 잃고, 말도 잃는다. 몇 년 후 그 소녀의 동생인 오스카의 할머니와 결혼하지만, 사랑하는 방법도 잃은 후 이다.

줄거리보다는 어느 한 부분을 인용해 보여주고 싶지만 그러면 다른 모든 부분, 인용될 가치가 충분한 부분들에게 공평하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그저 이렇게만 말하고 싶다. 막 이별한 사람이 이 책을 읽는다면, 이 책은 위에 내가 줄줄이 써 놓은 모든 것들이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전혀 다른 것이 되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내가 느꼈던 바로 그 감정을 당신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새로 사랑하게 하는 힘. 지나간 사랑이나 사랑이 아니라고 느꼈던 그 감정까지 사랑하게 하는 힘.
_ 김지현, 27세, 학생



<영웅문>, 고려원, 김용

영웅문
연인과의 이별, 오래된 추억을 떠올려보면 그것은 죽을 것 같은 엄청난 고통으로 기억된다. 그 당시 이별을 하면 괴로운 건 당연한 것이라 생각해서 일부러 더 내 마음을 괴롭게 몰고 갔던 것 같다.

함께한 시간이 오래되어 이제 생활처럼 익숙한 상황이 어느 순간 ‘펑’ 하고 사라진 그 상실감에 괴로워하며 누워도 잠이 오지 않고 누웠다 가슴이 터질 것 같은 느낌에 한밤중에 집을 나서 미친 사람처럼 돌아다니다 들어와 잠을 설치고, 배는 고프지만 밥생각은 없고 밥을 안 먹어 쓰러질 것 같지만 생각은 더 날카로워지고, 나중에는 공중에 붕 뜬 것 같은 멍한 상태가 되기를 두 달 정도 지나서 살이 7Kg정도 빠졌을 때 쯤 난 인정해야 했다. 이별의 그 슬픔 괴로움을 정면으로 받아 들이는 계획은 틀렸다는 것을. 이별은 결코 멋지거나, 낭만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이별은 엄연한 괴로운 과거였고, 또 나는 살아야 했었다. 힘들었지만 과거의 여자친구에 대한 생각을 조금씩 덜해가면서 나는 내 자신을 추스릴수 있었고, 오히려 그렇게 내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지난 일들을 더 애틋하게 추억하며 잘 간직할 수 있게 되었다.

만약 누군가가 이별 후 힘들어하고 있고, 내가 어떤 조언을 해야 한다면, 그리고 그 친구가 남자라면, 난 멋 부리지 말고 비겁하게 일단 회피하라고 권해주고 싶다. 그런 점에서 내가 추천하는 책은 김용의 ‘소설 영웅문 1, 2, 3부이다’. 사조영웅전, 신조협려전, 의천도룡기라는 멋진 이름을 가진 이 작품들은 무협지이다. 무협지라고 우습게 보지 마시길,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아주 놀라운 책이니까.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는 우선 재미있기 때문이다. 우리 때, 그리고 우리 윗 세대 때 많은 남자들을 폐인으로 만들었던 이 책은 한번 손에 들면 놓지 못하게 만들 정도로 흡입력이 대단하다. 게다가 3부까지 총 18권이어서 제1권을 손에 드는 순간 일주일은 그냥 지나가게 된다. 두 번째는 그 내용이 호방하고 경쾌하기 때문이다. 물론 2부는 어느 정도 남녀간의 정(情)이 많이 들어있지만, 전체적으로 흐르는 주제는 의(義)와 협(俠)이다. 큰 뜻을 품고 뜻이 맞는 사람들과 이루어 나가는 것! 바로 남자의 로망 아닌가. 잠시나마 괴로운 이별의 슬픔에서 벗어나서 이겨낼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단, 이 책을 보다가 업무에 지장을 줄 수 있으니 주의하길 바란다.
_이진욱, 34세, 한의사



<69 -Sixty Nine>, 작가정신, 무라카미 류

69 -Sixty Nine
소녀삘이 팍~ 나는 예쁜 친구가 한 명 있다. 우리가 대학생 때, 그 친구는 킹카와 캠퍼스 커플로 한창 연애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6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남자가 이별을 통보했다고 한다. 이유가... 너무 징징대서라고 했나?

우리가 다 겪은 바 있듯, 완전한 이별에 이르려면 몇 가지 단계를 거친다. 처음에는 자존심을 세우며 전화를 받지 않다가, 그쪽에서 응답이 없으면 그제야 ‘뭐가 잘못된 거지?’하며 전화를 시작한다. 그것도 안 통하면 메일을 쓰고, 그것도 안 통하면 주변을 서성거린다. 그러다 그가 자주 지나던 길목에서 우연스레 만나면 맘속에선 사과부터 해야지 해놓고는 계획과 달리 쌓였던 울분을 토해내서 남자를 식겁하게 만든다. 그 단계가 지나면, 상대를 증오하는 것으로 막장에 접어든다. 내 친구도 그 순서를 차곡차곡 밟더니 겨우 예전의 무미건조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얼마 후, 그 남자가 다른 여자 후배와 교제를 하더란다. 이쯤에서 내 친구는 이별의 가장 나쁜 코스를 타기 시작했다. 자신을 미워하기 시작한 거다. 자신의 단점에 대해서 이리저리 생각하기 시작하더니 결국 그 화살이 약간 불어난 살과 성형으로 모아졌다. ‘나 코가 너무 낮지?’라고 묻는데 그 자리에선 예스든 노든 현명한 답이란 게 있을 수 없다. 대신 읽고 있던 책을 한 권 건넸다. 69라고... 1969년, 질풍노도의 고등학생들이 벌이는 짠짠바라바라밤 대소동이다. 그 책에 이런 말이 나온다. 타도의 대상으로 등장하는 선생과 형사에게 복수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보다 즐겁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도 못했는데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받은 사람들이 무슨 책 읽을 정신이 있을까마는... 그나마 활자가 눈에 들어온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그에게 복수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보다 즐겁게 사는 것’ 이라고!
_ 임고은, 31세, 드라마제작사 제이에스픽쳐스 기획팀장


*이 컨텐츠의 모든 저작권은 한화그룹 공식 블로그 한화데이즈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