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우리는 북적북적한 에펠탑 앞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스위스의 대자연 앞에서 그동안 묵혀 둔 스트레스를 씻어내곤 합니다. 유럽의 유명한 랜드마크를 돌아보며 우물 안 개구리였던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보며 더 넓은 세상으로의 꿈을 펼쳐 보기도 하지요. 대학시절 떠났던 유럽 배낭여행은 직장인이 된 지금 돌이켜 보아도 생애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기억되곤 합니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 보면 유럽 거리의 곳곳에서 우연찮게, 또는 필연적으로 만났던 '클래식'공연들이 여행을 보다 풍부하게 만들어 주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부러 찾아가지 않아도 쉽게 만날 수 있고 주머니 가벼운 배낭여행자도 저렴한 가격에 쉽게 즐길 수 있는 음악회들. 유럽 여행 중에 만났던 주옥같은 클래식 공연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1989년은 동유럽의 공산 정권들이 연이어 붕괴한 대격변의 해였습니다. 이 때 폴란드에서 시작한 민주화 운동은 마치 도미노처럼 순식간에 동유럽 각국으로 퍼져갔고, 체코는 몇 달간의 정치적 공방 끝에 민주화 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혁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지요. 체코의 역사적인 대전환의 한가운데에는 음악이 있었습니다. 12월 14일 '베토벤의 9번 교향곡' 선율이 프라하의 스메타나 홀을 가득 채우던 날, 체코 필하모닉의 단원들은 자신들도 적극 지지했던 혁명이 성공한 것을 축하하며 혼신의 힘을 다한 열연을 펼쳤다고 전해집니다.
그리고 그 이듬해, 같은 장소인 스메타나홀에서 그 유명한 '나의 조국'이 연주되었습니다. 스메타나는 당시 76세로, 건강 악화로 인해 객원 지휘만 간간이 하던 상태였으나 역사적인 이 자리에는 서지 않을 수 없었겠죠. 1948년에 소련의 사주를 받은 사회주의자들이 일으킨 쿠데타로 체코의 민주화가 좌절되자 어쩔 수 없이 선택했던 망명의 세월이 40년 넘게 이어진 끝에 마침내 다시 돌아온 조국의 무대였기 때문이지요. 이처럼 체코인들에게 있어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은 단순히 체코 출신의 한 작곡가가 만든 유명한 곡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체코 여행 중에서는 '나의 조국'을 자주 들을 수 있습니다. 체코 항공을 타고 프라하 국제 공항에 비행기가 착륙하자 긴장이 가득했던 기내에 흘러나왔던 곡도, 프라하의 명물이라 불리는 카를교에서 백발의 노인 신사가 바이올린으로 연주하던 곡도 바로 이 스메타나의 곡 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이 곡을 만났던 기회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프라하 구시가지의 한 작은 교회에서 열린 연주회였습니다. 듣는 청중은 총 예닐곱명 정도? 바이올린, 첼로, 비올라의 아주 간단한 조합으로 이루어진 연주자들의 공연. 사실 공연 홍보를 하고자 길에서 전단을 나눠주던 한 아리따운 아가씨에 이끌려 보게된 공연이었지만 공연 수준은 정말 기대 그 이상! 스메타나의 도시 속 작은 교회에서, 스메타나 홀에서, 비행기에서 울려 퍼지던 '나의 조국'. 프라하 여행의 감흥을 200%로 끌여 올려 준 멋진 곡이었습니다.
프라하를 떠나 두번째 찾아온 곳 역시 동유럽의 국가 오스트리아, 수많은 음악가를 배출한 음악의 나라답게 거리 곳곳엔 다양한 오케스트라 홀, 음악 CD상점들이 즐비합니다. 수도 비엔나에서 2시간 여 기차를 달려 찾아온 잘츠부르크. 오늘 이곳에서 만난 정원 음악회는 그야말로 잘 가꾼 정원에서 만난 깜짝 선물과도 같았습니다.
미라벨 정원은 잘츠부르크 신시가지의 미라벨 궁전 앞에 펼쳐져 있는 정원입니다. 분수와 연못, 대리석 조각물과 많은 꽃들로 잘 장식되어 있지요. 중앙분수 주위에는 그리스 신화 속 영웅을 조각한 작품이 늘어서 있고 그 옆에는 유럽의 많은 바로크 예술품들을 전시해 놓은 바로크 박물관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정원을 한창을 둘러보던 중, 정원 속에서 흥겨운 음악 소리에 끌려 마주한 작은 오케스트라들의 한 여름의 정원 음악회가 펼쳐지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여주인공 마리아가 아이들과 '도레미 송'을 불렀던 곳으로 알려진 이곳 미라벨 정원은 멀리 보이는 호웬잘츠부르크성과 갖가지 콘서트가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선물합니다. 규모는 작아도 이처럼 다양한 콘서트가 열리는 것으로 유명한데,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궁전 내 대리석 홀에서 대주교를 위해 연주를 하기도 했고 지금도 실내악 연주회가 자주 열린다고 하네요. 또 세계에서 가장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결혼식이 열리는 식장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아름다운 결혼식 후 정원의 음악회를 만난다면 더 없이 달콤한 신혼의 로망이 실현 되겠지요?
오늘 마지막으로 찾아온 곳은 프랑스입니다. 스테인드 글라스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파리의 샤펠 성당을 아시나요? 이 성당에 들렀을 때 우연히 한장의 공연 팜플렛을 보게 되었습니다. 비발디 연주가 펼쳐진다는 내용을 보고 그 자리에서 예매를 하게 되었는데, 저처럼 이곳에서 많은 여행객들이 예상치 못했던 아름다운 공연을 선물받게 된다고 합니다. 유럽은 이처럼 성당이나 교회에서 열리는 크고 작은 음악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뜻밖에 만나는 이런 행운이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요..?
성 샤펠 성당은 루이 9세에 의해 1248년에 완성된 고딕성당의 대표적인 성당입니다. 무려 1000년 정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성당 이지요. 콘스탄티노플 황제로부터 입수한 가시면류관과 십자가 조각 등 성유물을 안치하기 위해 왕궁 안뜰에 세워진 이 성당은 하늘을 찌를듯이 높이 솟아있는 스테인드글라스가 화려하고 매혹적입니다.
1000년 역사를 간직한 성당에서 울려퍼지는 클래식의 향연은 어떤 모습일까요?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그리고 콘트라베이스로 이루어진 작은 규모의 연주자들은 비발디의 사계, 바이올린 협주곡 등을 연주했습니다. 특히 이 곳에는 연주자들의 뒷배경에 성당의 멋진 스테인드 글라스가 서 있고, 천정이 둥근 아치형으로 되어 있어서인지 4개의 악기가 연주하는 소리가 성당 전체로 퍼지면서 더욱 장엄한 연주를 완성시켜주더군요.
여기까지 유럽여행에서 만날 수 있는 우연적인 또는 필연적인 클래식의 향연을 만나보았는데요, 어땠나요? 성당과 교회에서 보다 쉽게 만날 수 있는 유럽 대표 작곡가들의 주옥같은 곡에서부터 모차르트가 연주회를 열었던 화려한 꽃장식의 정원 음악회까지. 미리 예정하지 않았던 일정이라 더욱 반갑고,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어 더욱 친근한 유럽 클래식 여행! 올 겨울에는 추운 날씨와 상관없이 내 마음을 더욱 훈훈하게 뎁혀 줄 유럽으로의 클래식 여행을 계획해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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