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나라로 여행을 온 해외 관광객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이태원 등 외국인이 많이 모여 있는 지역에 발을 들여 놓는다면 그야말로 외국어의 향연을 몸소 체험할 수 있지요. 그런데 문제는 외국인들이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도를 들고 저를 향해 환한 미소로 오는 모습을 발견하는 그 순간부터 머리는 쭈뼛, 등 뒤로는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합니다. 하아~ 이놈의 외국어는 왜 이렇게 익숙해지지 않을까요?
몇 년 전 이야기입니다. 회사에서 온라인 어학 강좌와 더불어 오프라인 어학 강좌를 실시했습니다. 매년 그냥 지나치다가 외국 사람과의 몇 번의 미팅 덕분에 영어에 대한 절실함을 깨닫고, 다급하게 중급 영어회화를 신청했습니다. 혼자 들으면 좀 뻘쭘할 것 같아서 친한 후배를 꼬셔서 같이 신청했습니다.
사실 그동안 회사에서는 특별히 영어를 쓸 일이 없으므로 특출나게 잘하는 사람 외에 대부분의 사람은 서로 비슷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입사 시 영어 성적은 대부분 비슷하고, 그 외에는 영어 쓸 일이 많이 없기 때문에 서로의 실력을 알 방법도 없었죠. 그래서 회화 수업을 듣는 것은 자신의 알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내 영어 실력이 사실은 이래요."라는 것을 공식적으로 밝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수업시간에 모인 사람들을 보고 화들짝 놀랐습니다. 10명의 인원 중 부장급 팀장급이 반 차장, 과장급이 3명 그리고 새파란 후배랑 저. 반을 바꾸려고 고급반을 기웃거려도 봤지만 범접할 수 없는 실력을 갖춘 후배들만 가득~~ 하여튼 요즘 애들이란…ㅠ_ㅠ 10명이 신청을 해서 반이 개설되었기 때문에 빠질 수도 없었습니다.
첫 시간은 자기소개를 하고 간단하게 마쳤습니다. 어른들 속에서 어찌나 불편하고, 긴장되던지... 평소에는 귀여운 막내가 될 수 있었지만, 영어에 대한 압박감이 심한 상황 속에서는 점점 위축되기만 했습니다. 함께 수업을 듣는 인사팀장님 왈 "넌 왜 목소리가 기어들어가니~ 평소 대로 해~~" 그나마 친한 분들은 괜찮은데, 왠지 근엄하고 말 한번 해보지 못한 분들 앞에서는 더욱 작아져만 갔습니다. 정말 무슨 영어 면접 보는 기분.
그나마 저보다 쬐~~금 더 못하는 후배가 있어 견뎌왔는데, 이놈이 어느 날부터 일 핑계를 대면서 안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배는 결국 수업 일수 미달과 구술시험 불참으로 수업료가 월급에서 쏙 빠져나가고 말았습니다. 어느 날부터 저 혼자 남게 됐습니다. 긴장감과 위축됨을 넘어 이제는 어찌나 수업이 무료한지, 어른들의 농담이 어찌나 재미가 없던지, 또 어찌나 진지하신지… 하루하루 저의 말수는 더욱 줄어 갔습니다. 어른들끼리는 영어로 대한민국의 사건 사고도 얘기하고, 군대 이야기도 하는 모습이 참 즐거워 보였습니다.
저는 그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수업을 거의 안 빠지고 최고의 출석률을 기록했습니다. 이렇게 저의 침묵 속에 어느덧 3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러 마지막 1:1 구슬 테스트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팀장님들의 강압적인 권유로 테스트를 제일 처음으로 봤습니다. 평범한 대화가 약 5분간 오간 후, 저는 짧은 실력으로 "솔직히 어른들이 너무 많아 불편했다. 다음엔 나잇대를 구분했으면 좋겠다."는 말로 마무리를 했습니다.
영어는 얼굴이 두꺼우면 금방 는다고 하는데, 철판 깔고 수업에 참여하지 못해서 좀 찝찝하긴 했지만 3개월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다신 회사에서 듣나 봐라~ 학원에 다니고 말지~’라는 생각과 함께… 그런데 얼마 후 인사팀장님이 뜻밖의 말을 했습니다.
"xx야 네 평가 점수가 제일 좋다. 영어 좀 가르쳐줘라"
저는 속으로 ‘뭐야, 장난해?’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교육 담당자가 저한테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출석률도 제일 높고, 마지막 구슬시험을 잘 봐서 성적이 제일 좋아요”
말은 제대로 못 했어도, 출석 성적은 좋은 성실함이 비법이었을까요? 3개월 동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지만 유종의 미를 거두어 기분은 좋았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도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단 출석률이 높고, 마지막 테스트 때는 일대일 테스트라 평소와는 다르게 하고 싶은 말을 좀 많이 했습니다. 선생님도 약간 놀라는 눈치? 선생님은 아마 3개월 동안 자신이 잘 가르쳐 실력이 아주 많이 향상됐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브라보~ 허무하게 생각했던 수업의 결과가 좋아서 뿌듯했습니다.
저는 이후로도 몇 번 더 영어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껴 친구와 함께 2:1 과외를 받기도 했습니다. 열심히 하면 느는 것 같고 또 손을 놔버리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잘 안 되는 게 외국어인 것 같습니다. 후배 중 영어를 잘해서 회사에서 지원해주는 해외 MBA를 가는 모습, 정말 부러웠습니다. 나이가 좀 있지만, 더 늦기 전에 더욱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자라날 자식들이 영어로 말을 걸 때 대꾸는 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 회사에서 영어에 발목 잡힐 상황이 발생할지 모르니 미리 준비해놔야겠습니다. 하지만 이노무 영어! 직장인들에게는 꾸준히 하기가 참 힘듭니다. 직장인들은 왜!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야만 할까요? 참으로 슬픈 현실입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직장인 여러분! 회사가 원하면 해야지 어쩌겠습니까? 우리는 회사가 주는 돈으로 먹고사는 직장인이니까요!! 모든 직장인이 자유자재로 혀가 꼬부라지는 그 날까지~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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